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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52.UC02. Weiser 박사의 생애

역사를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개념들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바꿔왔다. 수많은 혁신가들이 그들의 발명으로 기억되어 왔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한 인물들은, 특히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는 몇몇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한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가 바로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줄여서 Ubicomp이라고도 부른다.

이 용어는 컴퓨팅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으며, 컴퓨팅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엮어져 녹아 들어가는 비전을 담고 있다. 여기에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엮어져 녹아 들어간다”라는 간단한 표현 속에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복잡한 세상에 퍼즐 맞추듯 제대로 맞춰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하여간, 이런 대단한 Ubicomp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려면 필연적으로 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바로 Mark Weiser(1952년 7월 23일 ~ 1999년 4월 27일)박사가 그 사람이다.

Mark Weiser 박사는 단순히 컴퓨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던 그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Mark Weiser 박사는 Ubicomp을 하나의 일관된 패러다임으로 정립한 어떻게 보면 사상가이며 소위 “혼돈 속의 패턴 탐구자”로 판단되기도 한다.

‘퍼스널 컴퓨터’가 화면, 키보드, 그리고 직접적이고 명확한 인터랙션을 통해 사람들의 눈 앞에 존재감을 드러내던 1980년대에, Mark Weiser 박사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 즉 컴퓨터가 배경으로 물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흐름에 깊숙하게 어우러지게 되는 미래를 제시한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훗날 AMI(Ambient Intelligence), 퍼베이시브 컴퓨팅과 같은 표현으로 논의된 개념들의 지적인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Calm Technology라는 더 넓은 개념뿐만 아니라, MASERINTS의 개념 기반은 Ubicomp에 대한 Mark Weiser 박사의 비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Ubicomp을 의미 있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 비전을 제시한 Mark Weiser 박사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Mark Weiser 박사의 저술, 당시의 기술적 맥락, 그리고 Mark Weiser 박사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회고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은 ‘Mark Weiser’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Mark Weiser 박사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Mark Weiser’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면 필연적으로 Mark Weiser 박사의 논문을 읽는다든가, Mark Weiser 박사가 제시한 기술을 연구한다든가, 또는 Mark Weiser 박사의 비전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제시한 중간 단계의 기술 발전들을 살펴본다든가, 그의 동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통한 대체경험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몇 가지 구체적인 순간과 그 당시 상황들을 되짚어보면서, Mark Weiser 박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살았던 과거의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그로 하여금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미래를 구상하는 패러다임을 제안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Mark Weiser 박사는 1952년 7월 23일 미국 미시간호 옆에 자리잡은 일리노이 주의 바람의 도시인 아름다운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Mark Weiser 박사는 젊어서부터 기술적 깊이와 지적 독립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는데, 20대에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여러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이것은 이론적인 생각과 실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그의 성격과 능력을 일찍부터 보여주는 것이었다.

Mark Weiser 박사는 미시간 주 앤 아버의 미시간 대학에서 “Computer & Communication Science”를 공부했고, 1976년도에 석사를 그리고 만 27세가 되던 해인 1979년도에 Ph.D를 받았다.

Ph.D를 끝내고, Mark Weiser 박사는 매릴랜드 대학, “College Park”의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에 들어가 가르쳤으며, 1987년에 Mark Weiser 박사는 이미 컴퓨팅의 미래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Xerox PARC의 연구원으로 입사해서 다음 해에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실의 리더가 되었다.

아래의 지도는 미국 전역을 보여주는데, Mark Weiser 박사가 태어나면서 거쳐간 장소들을 별도로 표시해 두었다.

Mark Weiser 박사는 3번째 회사를 설립한 1994년까지 리더로 있었으며, 이 기간 동안 그는 훗날 Ubicomp을 정의하게 될 많은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했다. 1996년에는 PARC에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복귀하여 Xerox PARC로 돌아와서 나머지 생을 보냈으며, 연구를 지속하고 PARC의 혁신 기술을 실제 응용 분야에 적용하는 데 힘썼다.

Mark Weiser 박사의 관심사는 컴퓨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93년, 41세의 나이에 Mark Weiser 박사는 “Severe Tire Damage”라는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는데, 이 밴드는 인터넷을 통해 라이브 공연을 방송한 최초의 음악 그룹이 되었다. 이런 활동은 기술이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력을 요구하기 보다는 그런 장벽을 오히려 허무는 폭 넒은 비전을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Mark Weiser 박사는 1999년 4월 27일 오후 8시 31분, 짧은 투병 끝에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생애는 비교적 짧았지만, 그가 전달하려는 생각의 명확한 의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