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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08. 전환과 기준선을 넘어

철학이라는 분야가 어떤 기술들이 왜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사라지는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이것이 MASERINTS의 개념적 디자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주는 데 매우 유용한 분야인 것 같다. Mark Weiser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개념을 언급했는데, 즉 Gadamer의 ‘기준선’과 Heidegger의 사물과 도구간의 전환(Ready-To-Hand)이다.

Martin Heidegger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두 가지 기본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접한다고 관찰했다. 하나는 도구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도구로 본다는 것은 사물이 도구로 실제 암묵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즉, 사물 그 자체로 주의를 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망치질을 할 때 망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못을 박는다고 생각한다. 망치는 도구로 사용 중에 보이지 않게 된다.

사물로 이해되는 것은 사물로 관찰되거나,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는 고장이 발생하거나 도구를 살펴보기 위해 뒤로 물러설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망치의 머리가 빠져 떨어지면, 갑자기 망치 자체를 알아차리게 되는데, 이것이 도구가 아닌 사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Martin Heidegger의 요점은 일상적인 대처와 숙련된 활동이 사용하는 도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도구는 행동의 흐름 속으로 후퇴하여 초점 의식에서 사라진다. 예를 들면, 펜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한다면, 처음에는 펜을 집어 들었을 때 무게, 그립의 부드러움, 잉크의 색깔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더 이상 펜이라는 도구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고 페이지에 쓰고 싶은 단어에만 집중하게 된다. 결국, 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Martin Heidegger가 말한 사용하고 있는 도구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도구는 나의 관심의 중심이 아니라, 나의 연장선, 내가 하는 일의 흐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펜을 다시 인식하는 유일한 순간은 잉크가 떨어지거나 부러질 경우이다. 즉, 도구는 있는데, 무엇인가 활동한다는 것의 뒤편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Mark Weiser가 “기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최고의 기술은 삶의 배경으로 사라져서, 마치 MASERINTS가 나의 관심을 요구하는 대신 백그라운드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것처럼, 삶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다시 들어 보면, 운전자가 핸들을 사용한다. 부드럽게 운전하는 동안 핸들은 손에 있는 도구이다. 그런데 핸들이 고장 나면 핸들은 눈앞에 있는 사물이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이 바뀐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은 손에 있는 도구가 되지만, 앱이 작동이 중단되면 눈 앞에 사물로 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기술을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기술의 사라짐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도구로 구현하는 디자인은 기술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사용자는 더 이상 기술을 기술로 경험하지 않고, 기술이 가능하게 하는 행위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Hans-Georg Gadamer는 기준선이라는 용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어떤 기대, 문화적 습관, 역사적 이해, 그리고 가정(假定)의 배경을 설명한다. 기준선은 단일 대상이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는 전체 배경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준선의 융합이라는 것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기준선과 다른 대상의 기준선을 연결하여 관점을 넓히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수백 년 전에 쓰인 시를 내가 읽고 있다면, 나의 현대적 언어, 사회적 기대와 같은 현재적 관점의 기준선과 시의 역사적 관점을 나타내는 그 기준선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詩)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기준선들을 융합해야 한다. 즉, 융합을 하고 나면, 나의 배경지식들을 시에 적용하게 되고, 시는 나의 배경지식들을 미묘하게 약간씩 변화시키게 된다. 즉, 시를 읽을 때 나의 삶의 경험, 기억, 지식 그리고 감정 등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기준선이다. 그런데 시에도 자체의 기준선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과 특정한 이미지나 감정을 담아 쓰였다고 보는데, 그것이 바로 시의 기준선이다.

내가 시를 읽게 되면 내 기준선과 시의 기준선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나는 내 자신의 관점을 통해 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동시에 시는 비록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치 부드럽게 주고받는 것처럼 시를 읽는 나와 그 ‘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Gadamer가 말한 것이다. 이해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나의 세계와 텍스트의 세계 사이의 대화 같은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일부 문화권에서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것 같은 일상적인 규범은 하나의 기준선에 속한다. 모든 행동에 대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선 자체가 배경적인 기대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Gadamer의 기준선의 융합으로 내가 내 배경을 시에 접목시키고, 시가 나의 관점을 바꾸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것이 MASERINTS와 “기술이 사라지는 것”과 관련이 있게 된다.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도 기준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습관, 욕구, 기분, 그리고 개인적인 이력이라는 기준선을 가지고 있다.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에도 또 다른 기준선을 가지고 있는데, 맥락적 단서, 센서 데이터, 흔적에 의한 예측, 그리고 수집한 모든 배경 정보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해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과 PTS는 각각의 자신만의 기준선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내가 시를 읽었을 때의 ‘나’와 ‘시’처럼, 그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MASERINTS는 내가 피곤하다는 것을 감지하면 조명을 약간 어둡게 하거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의 감각을 통해 그 조정을 해석한다. 내 자신의 기준선을 통해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MASERINTS가 무엇을 나를 위해 했나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 이제 좀 쉴 수 있겠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반응, 즉 마음이 더 차분해지고, 약간의 삶의 흐름의 속도가 느려지는 듯한 느낌은 MASERINTS에 피드백 되어 MASERINTS가 PTS에게 수행할 앞으로의 작동 방식을 조정하게 된다.

결국,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이 나를 배워 가는 동안, 나도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MASERINTS의 기준선의 융합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주고받는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져서 MASERINTS라는 기술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어, 남는 것은 조화로움 밖에 없다. 마치 내가 시를 읽을 때 나의 삶에 그 시가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딱 들어 맞는 그런 디지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MASERINTS라는 기술은 사라진다. MASERINTS라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PTS의 경험 기준선에 녹아 들어 있기 때문이다. MASERINTS의 경우 모든 기준선은 PTS의 기준선으로 맞춰져 가게 되고 그림과 같이 주고받지만, 모든 기준선은 PTS의 기준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시를 읽으면 내 기준선을 적용하려고 했지만, 결국 시에 흠뻑 젖어 그 ‘시’가 보여주는 기준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격이다.

이것이 기술의 사라짐에 중요한 이유가 되는데, 기술이 PTS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면,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즉,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들의 틀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 난방이 일상생활과 나의 기준선의 일부가 되면, 나는 “방이 쾌적할 거야”라고 당연히 여기게 되고, 무엇인가 잘못될 때까지는 난방 시스템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술은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기준선의 전제조건 속으로 녹아 들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Mark Weiser는 이러한 사상가들을 명시적으로 인용하며 가장 강력한 기술은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 즉 나의 관심과 주의력에서 사라지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Simon, Polanyi, Gibson, Gadamer, Martin Heidegger 등을 언급하며, 숙련된 기술, 안정적인 지각, 그리고 배경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도구 그 자체를 넘어선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지 설명한다.

Mark Weiser의 목표, 즉 ‘Ubiquitous Computing’, ‘Calm Technology’, ‘Embodied Virtuality’는 참여하는 컴퓨터를 ‘사물과 도구간의 전환’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고 PTS의 기준선의 일부로 만들어 PTS가 고요하고 삶의 흐름에 원활하고 매끄러운 환경만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Martin Heidegger의 ‘사물과 도구간의 전환’과 Gadamer의 기준선은 Mark Weiser가 활용하고자 했던 동일한 일상적 현상을 철학적으로 명명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내 배경의 일부가 되면, 도구는 능동적인 알아차림에서 사라지고 더 큰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한다.

MASERINTS의 목표는 디지털 공간과 그것이 PTS에게 대한 지원과 도움을 매우 안정적으로 디자인하여 연산이 즉시 ‘사물과 도구간의 전환’ 될 수 있도록 차분하고 직관적인 지원을 제공하게 되고, PTS의 기준선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려면 명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즉, PTS가 “침묵의 동반자”가 되도록 주변 배경 시스템을 검토하고, 재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 Martin Heidegge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idegger

■ Martin Heidegge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idegger

■ Hans-Georg Gadame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gadamer 

■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Martin Heidegger, https://www2.hawaii.edu/~freeman/courses/phil394/The%20Question%20Concerning%20Technology.pdf

■ Fusion of horizons, https://en.wikipedia.org/wiki/Fusion_of_horizons

■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Mark Weiser,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

■ Calm Tech, Then and Now, John Seely Brown, https://medium.com/re-form/calm-tech-then-and-now-deddb05697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