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나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기술에 맞추기 보다는 그러한 기술들이 나에게 맞추어 주길 바란다. 가장 바라는 것은 어떤 기술의 발전도, 개선 사항도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고도 그 변화가 나의 일상 생활 속으로 조용히 다가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기술이 나에게 맞추어 지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어쩌면 이런 저런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아야 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나를 잘 알 수 있을까?
옛날의 왕과 하인들의 관계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인들은 왕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인들은 평생을 적시적소에 왕에게 지원과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하인들이 왕에게 무엇인가 약점을 잡으려고, 왕에게서 무엇인가를 가져가려고 그렇게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왕을 이해하려고 했을까? 하인들은 왕이 잠시 후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만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 주변의 디지털 공간도 나를 알기 위해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무엇인가 해야 한다.
나는 어떤 순간에도, 아주 짧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하나의 스냅사진처럼 상황을 남기고, 그 상황 안에는 그 흔적과 관련된 주변의 맥락적 요소들이 같이 주인공처럼 존재하게 된다. 이 스냅사진들이 모여서 하나의 맥락이 되고, 이 맥락이 삶의 흐름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내 주변의 디지털 공간은 나의 흔적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매우 짧은 순간 후에 나의 요구와 필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요구와 필요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만큼만 제공하게 되면 그 안에서 지원과 도움을 받는 나는 그저 살아갈 뿐이며, 그런 지원과 도움은 내 스스로 해결했다는 만족감까지 가지게 된다.

이런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 디지털 공간은 나에게서 많은 흔적을 관찰하고 습득해 가야 한다. 나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수집되기 위해 언제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른 나의 모든 움직임과 생각이 분석되어야 하고,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곁에서 필요한 컴퓨팅이 일어나서 그러한 분석의 결과로 인해 다가오는 기술을 나에게 맞추게 되는 또 다른 기술이 동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과정이 거추장스러울 것 같고, 신경 쓰일 것 같다면, 기술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진 기술이 주는 지원과 도움은 너무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해서 의식을 사로잡지도 않고, 또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지원과 도움은 나를 중심으로 나의 삶의 흐름 속에 매끄럽게 녹아 들어가 있어서 나의 삶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또 거추장스럽지도 않게 나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디지털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어떤 기능을 가진 기술로 여기지 않고, 같이 동행하는 동반자로 여겨 결국 기술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기술을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반자라면 나 만을 위해, 나의 삶의 흐름에 섞여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나는 기술의 개입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그저 여느 때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기술을 사용하고 싶지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기술들이 보이지 않게 다가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렇게 기술을 사라지게 하는 기술은 매우 심오한 기술이며 힘들고 어려운 기술이다. 오히려 물리적인 좋은 도구는 오랜 사용으로 습관에 의해 나의 의식에서 사라지게 될 수는 있다. 달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의 지원과 도움은 그런 습관에 의해 사라지는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이라는 영화의 프레임들 중의 하나가 되어 나의 삶과 결이 같게 엮어져 있게 해서 그 기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술에 치이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술은 발전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점점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을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 필요
어떤 대상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기 위해서는 우선은 그 기술이 좋은 도구와 같이 사람의 삶 속에서 가지는 습관적인 경험에 의해 분명한 의식 속에 자리잡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기술은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의 중심은 거쳐가겠지만, 그 자체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흐름을 끊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고, 그러면서 점점 그 대상과 의식적으로 연결하게 되는 실마리가 의식 안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기술들은 환경을 개인화 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지 않고도 서비스나 지원과 도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기술은 점점 사라져 버리고 몇 가지만이 사람들 주변에 남아있게 되고, 다른 것들은 사람들의 주변 백그라운드에 있으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화된 서비스나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수집하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 내에서는 터미널 시스템과 수많은 컴퓨터 디바이스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PTS의 디지털 트윈인 VPTS를 생성하고, 성장시키며 그로부터 개인화된 VCC(Virtual Created Context), VAFF(Virtual Affordance), 그리고 개인화된 VEB(Virtually Expanded Brain), 그리고 PTS의 경험과 현실을 동기화하는 UCA(Ubiquitous Computational Access)를 제공하게 된다. 환경을 개인화 하는 단계를 넘어 PTS를 중심으로 PTS를 존중하며, 모든 지원과 도움이 PTS을 위해 준비되고 제공되는 것이다.
사람들 눈 앞에서 혼자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움직이던 컴퓨터 디바이스와 같은 장치들이 많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작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 백그라운드에서 움직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 디바이스들이 서로 연결되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훨씬 강력한 컴퓨팅을 제공하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눈에 보이면서 믿음을 주는 그런 시대는 지나 갔다. 거실의 커다란 텔레비전이 믿음을 주는 그런 시대는 지나 갔다. 대단한 오디오 시스템의 중앙에 앉아서 음악에 심취하던 시대는 지나 갔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고, 오디오 시스템이 없어도 훌륭한 바흐의 곡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더군다나 듣는 사람이 어떤 자세이든지, 어디에 있든지 그를 중심으로 조율될 수 있어야 하며, 전화가 없어도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전화를 받으러 뛰어가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사라질 때이다.
참고자료
■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Mark Weiser,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
■ Calm Tech, Then and Now, John Seely Brown, https://medium.com/re-form/calm-tech-then-and-now-deddb05697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