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Mark Weiser 박사가 Ubicomp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적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를 재정의하고자 했다. 그의 비전은 세상에 더 많은 컴퓨터를 보급하거나, 전통적인 의미에서 더 강력한 컴퓨터의 성능을 가진 디바이스를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의 심리적 지위를 바꾸는 것, 즉 기술이 관심과 주의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사라지고 사람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눈에 띄지 않는 백그라운드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대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지각 심리학자 James J. Gibson의 연구에서 하나의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Gibson은 환경이 변하거나 관찰자가 움직이더라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시각 세계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를 불변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Mark Weiser 박사는 Gibson의 생각에서 기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로 이해했다. 기술이란 모름지기 안정적이고, 거슬리지 않으며, 일상 생활에 나무나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사람들이 그 기술을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숨겨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이고 심지어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며, 마치 사람들이 생각 없이 신뢰하는 그런 배경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1)이다.
무엇인가가 ‘사라진다’는 것의 심리학적 의미
Mark Weiser 박사가 왜 James Gibson의 개념을 인용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우선 James Gibson이 말한 ‘불변성(Invariant)’의 본질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James Gibson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불변성이란 결코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관찰자의 시점이 변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유지되는 경험의 ‘상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간다면, 그 때 눈에 맺히는 빛의 패턴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지만, 방의 전체적인 형태나 바닥의 견고함, 그리고 문틀의 구조는 근본적인 그 안정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은 그것들이 너무나 일관되게 존재하여서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Gibson이 이러한 요소들을 ‘불변성’이라 부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불변성은 지각의 기준점이며,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환경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요소로 인정될 것이며, 사람들이 그 요소들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도 원래 하려고 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말 그대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바탕인 것(2)이다.
Mark Weiser 박사는 기술의 가장 고도화된 형태가 바로 이러한 수준, 즉 단순히 눈에 보이는 도구가 아니라 변함없는 배경 조건처럼 불변성의 수준을 지향해야 함을 간파했다. 그래야 기술이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력을 빼앗으려 경쟁하지 않고, 그리고 중심에 있는 사람이 겨냥한 목표를 묵묵히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뿐이다.
Gibson과 Weiser 박사의 만남
Mark Weiser 박사가 Gibson을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이나 가벼운 인용이 아니었다. Mark Weiser 박사는 20세기 후반 들어 더욱 절박해진 문제, 즉 컴퓨팅 인터페이스의 침해성을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Gibson의 이론을 가져왔다.
당시의 퍼스널 컴퓨터는 사용자의 주의력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모든 명령어, 모든 파일, 모든 조작 하나하나가 사용자를 현실 세계로부터 떼어내 멀어지게 하고 디지털 디바이스라는 좁은 틀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 컴퓨팅은 인간의 주의력을 인위적인 제한된 디지털 틀 안에 강제로 묶어 둠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의 환경의 심리적 자연스러움을 파괴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Mark Weiser 박사는 Gibson의 이론을 빌려 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기술이 주인공이 되어 전면에 나서는 대신, Mark Weiser 박사는 불변성이 그러하듯 기술이 배경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컴퓨터는 집의 벽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사람들을 도우며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결코 자신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 존재로 말이다.
James Gibson이 사람들이 환경의 안정적인 구조를 통해 세상을 직접 지각하는 방식을 설명했다면, Mark Weiser 박사는 기술 자체가 그러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특별할 것도 없고, 그래서 눈에 띄지도 않고, 믿을 수 있으며, 조용히 지원과 도움을 주되, 굳이 주목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그런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Gibson은 Mark Weiser 박사에게 Ubicomp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명할 개념적 언어를 선사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디바이스의 숫자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팅이라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시각적 불변성’이 Ubicomp의 모델이 되기까지
Mark Weiser 박사가 “가장 심오한 기술이란 일상의 결 속에 녹아 들어 그것과 구별할 수 없게 된 기술”이라고 썼을 때, 그가 의미한 기술 설계의 궁극적 성취는 바로 도구를 배경의 한 요소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의미했다. 여기서 배경이란 단순히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각종 컴퓨터 디바이스와 시스템 간의 조용한 소통으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변하듯 조절되는 ‘공간’과 같은 사람들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지원 기능들로 가득 차 있다.
Mark Weiser 박사는 이러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어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완벽한 친숙함, 매끄러운 기능, 그리고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포착하는 상태를 모두 담아낼 심리학적 개념이 필요했다. James Gibson의 ‘시각적 불변성’은 정확히 그 요구에 부합하는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Ubicomp의 부분적인 세계에서 사람들이 별도의 입력이나 조작 없이도 집안을 쾌적하게 유지해 주는 스마트 온도 조절기는 이제는 하나의 ‘불변성’으로 작용한다.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조용히 밝기를 조절하는 방 역시 ‘불변성’이 된다. 필요할 때 나타났다가 필요 없을 때 물러나는 디스플레이 또한 ‘불변성’처럼 행동한다. 이처럼 주변 환경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지원체계로 채워지면서 기술은 이제 일상생활의 지각적이면서 실용적인 안정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James Gibson의 불변성이 주의를 요구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물리적 세계로 인도하듯, Mark Weiser 박사의 Ubicomp은 의식을 침범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디지털 공간 속으로 안내한다.
주변부에 머무는 기술
Mark Weiser 박사는 가장 의미 있는 기술이란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머무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주변부야 말로 ‘불변성(Invariants)’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정적이고, 안심할 수 있으며, 언제나 사람들 곁에 사용 가능한 요소들로 준비되어 있는 영역이다. 이것이 바로 Ubicomp의 철학적 핵심이다. 물리적으로 꽁꽁 숨겨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통합을 통해 심리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이는 배경에서 은은하게 작동하고, 거슬리지 않으며, 끊임없이 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기술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디바이스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현실 세계로부터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 대신 세상 그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되며, 기술은 환경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Mark Weiser 박사와 John Seeley Brown이 발표한 ‘Calm Technology’(3) 개념으로 더욱 확장되었다.
Mark Weiser 박사가 James Gibson의 불변성 이론을 인용한 이유는 James Gibson의 ‘불변성 이론’이 Mark Weiser 박사가 꿈꾸던 기술, 즉 세상에 꼭 필요한,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기술이라는 목표를 뒷받침할 완벽한 심리학적 그리고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Mark Weiser 박사는 기술이 그저 자연스럽고 친숙하며, 평범하게 느껴지길 원했다. 즉, 행동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는 기술 말이다.
‘불변성’이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지각을 인도하듯, Ubicomp 또한 의식을 점유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Gibson은 이러한 개념의 씨앗을 제공했고, Mark Weiser 박사는 그것을 새로운 기술 철학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이 매혹적인 연결을 통해 Ubicomp은 다음과 같은 결정적 원칙을 얻게 되었다. 즉, 기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각적 배경의 일부가 됨으로써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급된 각주의 내용
(1)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Mark Weiser,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
(2)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James Gibson, 1979, Ch9. “The Theory of Information Pickup” and Ch10. “The Detection of Invariants”, https://books.google.co.kr/books?id=yv_9hU_26KEC
(3) The Coming Age of Calm Technology, Mark Weiser & John Seely Brown, October 1996, https://calmtech.com/papers/coming-age-calm-technology
참고가 될 만한 자료
■ Visual Perception Theory In Psychology, Saul McLeod, 2023, https://www.simplypsychology.org/perception-theories.html
■ Ambient optic array, https://en.wikipedia.org/wiki/Ambient_optic_array
■ The Theory of Affordance, James J. Gibson, 1979, https://monoskop.org/images/c/c6/Gibson_James_J_1977_1979_The_Theory_of_Affordances.pdf
■ James J. Gibson, https://monoskop.org/James_J._Gibson
■ Optic Flow: Perceiving and Acting in a 3-D World, B Rogers, 2021,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7869175
■ Optic Flow: A History,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652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