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Simon은 그의 저서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1)을 통해, 처음에는 하나하나 분절되어 의식적으로 처리되어야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어떻게 점차 물 흐르듯 유연하고 힘들이지 않아도 발휘되는 숙련된 역량으로 변모하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는 훗날 그가 ‘청킹(Chunking)’ 혹은 ‘Compilation of knowledge and action(지식과 행동의 컴파일링)’(2)이라 부른 개념으로 이어진다.
경지에 오른 체스의 고수는 더 이상 가능한 모든 수를 일일이 계산하며 머리를 싸매지 않고, 수많은 연습을 거친 음악가는 악보 위의 음표 하나하나를 낱개로 읽어 내는 수고를 멈추고, 노련한 운전자는 코너를 돌 때 핸들을 꺾어야 할 각도를 숫자로 따지지 않게 된다.
한때 의식의 중심을 차지하며 사람들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던 그 치열하게 주의력을 집중해야 했던 그 대상들은, 어느덧 시야의 뒤편으로 물러나 든든한 백그라운드의 숙련된 기술로 자리를 잡는다.
Herbert Simon이 얻게 된 이 깨달음은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의 복잡하고 구조화된 의미의 패턴을 어떻게 자기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지, 그리고 그 흡수한 지식을 통해 어떻게 매 순간 사용해야 할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고민과 반복적인 의식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열쇠라 할 수 있다.
보통은 이를 ‘숙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원래 그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복잡함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함을 내면의 본능적인 ‘덩어리 경험’으로 치환하여 사람들을 더 높은 차원의 자유로 이끄는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Mark Weiser 박사의 Ubicomp이 지향하는 지점은 조금 더 명확하게 된다. 컴퓨팅 기술이 의식적인 ‘연산’의 영역에 머물며 사람들을 거추장스럽거나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의 ‘직관’처럼 주변부에서 묵묵히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Herbert Simon이 말한 ‘심리적 숙련’과 Mark Weiser 박사가 말한 기술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의 깊은 원리를 향해 나란히 뻗어 있는 두 줄기 빛과 같다. 그것은 바로 인간 중심의 설계에서 진정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들의 주의를 강요하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주의를 사람들에게 온전히 돌려주며 자신은 백그라운드로 물러날 줄 아는 겸손한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이 Ubicomp을 기본 개념으로 한 MASERINTS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Herbert Simon의 내재화된 숙련과 Mark Weiser 박사의 보이지 않는 사라진 기술이라는 하나의 공유된 줄기를 먼 미래로 확장해 본다면, 보다 확장된 개념의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고 있는 MASERINTS라 불리는 혁신적인 디지털 체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의 의식 주변부에서 맴도는 지금의 디지털 공간과 같은 보조 디바이스가 아니다. MASERINTS는 사람들의 인지 과정에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준에서 MASERINTS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앞서 말한 ‘컴파일링’이라는 숙련의 내재화 과정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매 순간의 일상적인 삶의 흐름으로 구현해내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을 자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리고 단순하게 인터페이스를 숨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라고 불리는 디지털 공간의 중심에 머물게 되는 사람의 주변 환경과 신체, 심지어는 그 사람 특유의 신경학적 리듬 속에 정교하게 엮어져 매끄럽게 녹아 들어간 항상 같이 존재하게 되는 집사 같은 동반자 격의 디지털 공간이 되는 셈이다.
이 MASERINTS는 PTS의 디지털 쌍둥이인 VPTS(Virtual PTS)를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어느 순간 잊어버리거나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숙련도를 PTS 모르게, PTS가 단서를 찾아 실마리를 풀 수 있도록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PTS는 스스로 생각하고, 단서와 실마리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만족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 속에서 ‘컴파일링’이라는 현상은 더 이상 고통스럽고 지루한 반복 학습 끝에 얻어지는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 시스템이 학습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보이지 않는 지지대가 되어주며, 능력을 지속적으로 북돋아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PTS는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잡한 계산이나 의식적인 고민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통찰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역량을 마치 원래 자신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그 숙련도는 스스로 더욱 쌓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가지는 PTS의 만족도는 PTS가 “아! 이 맛이야!”라고 감탄을 내 놓을 정도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의 고통은 덜어내고, 숙련의 즐거움만을 일상의 감각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이 바로 MASERINTS가 지향하는 사람과 기술의 진정한 공명이다.
나를 감싸는 지능의 숨결은 하드웨어를 넘어 인지적 공간으로
이 경이로운 능력을 개념설계에서 온전히 그려 내기 위해, 이제 현실에서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가진 물리적 한계를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대신 사람들을 둘러싼 공간 자체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탱해 주는 인지적인 발판이 되는 미래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MASERINTS가 구현된 미래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모든 디지털 공간은 극도로 미세하고 정교한 감각망과 컴퓨팅 디바이스들로 가득 채워져 있게 된다. 물론 사람들의 공간적으로 거추장스럽지 않게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디바이스들은 너무나 촘촘하고 지연 없이 작동하기에, 마치 사람들의 손발이 움직이고 뇌가 생각하는 과정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무거운 헤드셋이나 손에 꼭 쥐고 다녀야 하는 스마트폰,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제어기 같은 디바이스들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신 MASERINTS를 구성하는 터미널 시스템이나 컴퓨터 디바이스들, 또는 공간을 구성할 MICRONELIS와 같은 하드웨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부드럽게 흐를 수 있도록 무수한 지원과 도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MICRONELIS 중의 하나인 옷감의 섬유 속에 스며든 미세 센서 네트워크, 피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미세 유체 인터페이스, 그리고 인간의 몸짓과 의도, 표정, 심지어 생체 신호까지도 찰나의 순간에 읽어내는 엄청난 연산력을 가진 공간 스캐너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 시스템들은 결코 사람들에게 응답을 요구하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또한 제공한 지원과 도움에 대한 단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매 순간의 심리학적, 인류학적, 그리고 신경학적 흐름과 정말로 조용히 공명하며,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사람들 존재의 일부가 되어 함께 호흡할 뿐이다.
확장된 신경계처럼 공간과 마음을 잇는 보이지 않는 그물망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마주할 인프라는 더 이상 차가운 컴퓨터들이 즐비한 덩어리가 아니라, 공간과 사물 속에 촘촘히 흩어져 하나로 이어진 매끄러운 지능의 그물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건물벽의 질감 속으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이동 수단의 골격 안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지니는 작은 소지품의 안감 속으로 양자 보안 기술이 접목된 통신망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파고들게 된다.
이 MASERINTS의 공간을 구성하는 엣지 컴퓨팅 능력을 가진 노드들은 커다란 서버실 랙에 갇힌 거대한 디바이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해석하는 부드러운 상호작용의 존재들로 사람들 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모든 기능과 디바이스가 기능적 수준으로 분리되고 공간 속으로 또는 주변 환경 속으로 흩어지겠지만, 그것들이 합쳐지면 거대한 컴퓨터 체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 그 안에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을 MASERINTS에서는 개인화된 연산 작업이라고 부르는 Robotiz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은 마치 사람의 몸 밖으로 확장된 제2의 신경계처럼 작동하게 된다.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가 낯선 물건을 집어 들거나 새로운 개념을 마주할 때, 혹은 복잡한 작업에 뛰어들 때, 이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은 PTS의 인지 회로를 이미 외부에 조성된 MASERINTS의 PTS에 대한 디지털 인지 회로를 가지고 조용히 보강하기 시작한다. 주변 공간 속의 단서들을 PTS의 의도에 맞게 정렬하고, 기억의 통로를 열어주며, 감각과 움직임의 기대치를 정교하게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 지루한 반복 훈련을 거쳐야만 했다면, 이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은 그 기술의 구조 자체를 실시간으로 공간에 펼쳐 보여주는데, 어떤 것은 명시적으로, 또 어떤 것은 만족도를 최고로 상승시키기 위해 MASERINTS의 터미널 시스템인 VEB(Virtually Expanded Brain)이나 VCC(Virtual Created Context), VAFF(Virtual Affordance) 등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지원과 도움을 삶의 정해진 시공간에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PTS는 그저 그 흐름에 섞여 의식적이지 않게 자신이 지금 매뉴얼을 보는 듯이, 하지만, 그저 일상의 삶을 살아가듯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MASERINTS가 PTS에 대해 일으키는 상호작용 속에서 복잡한 패턴도 힘들이지 않고 내재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람들 내부에만 머물던 ‘숙련의 과정’이 잠시 세상 밖으로 꺼내어져 시스템과 함께 다듬어진 뒤, 다시 PTS의 본능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이로운 순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언급된 각주의 내용
(1)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 Herbert A. Simon, 1969/1996, https://monoskop.org/images/9/9c/Simon_Herbert_A_The_Sciences_of_the_Artificial_3rd_ed.pdf
(2) The Architecture of Cognition, John R. Anderson, 1983, https://api.pageplace.de/preview/DT0400.9781317759539_A23902499/preview-9781317759539_A23902499.pdf
Herbert Simon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참고가 될 만한 자료
■ Herbert A. Simon, https://en.wikipedia.org/wiki/Herbert_A._Simon
■ Herbert Simon, https://thedecisionlab.com/thinkers/computer-science/herbert-simon
■ Herbert Simon, https://www.chessprogramming.org/Herbert_Simon
■ Hierarchy and History in Simon’s “Architecture of Complexity”, PE Agre, 2003, https://pages.gseis.ucla.edu/faculty/agre/simon.html
■ Models of My Life, Herbert A Simon, The Rabbit Hole, Feb 22, 2024, https://blas.com/models-of-my-life
■ Bounded Rationality, G Wheeler, 2018, https://plato.stanford.edu/entries/bounded-rationality
■ 50 Years as Carnegie Mellon University, Herbert Simon, https://www.cmu.edu/50/founder-stories/story-simon.html
■ A Life of the Mind: Remembering Herbert Simon, Apr 22, 2001, https://www.psychologicalscience.org/observer/a-life-of-the-mind-remembering-herb-simon
■ Calm Tech, Then and Now, John Seely Brown, https://medium.com/re-form/calm-tech-then-and-now-deddb05697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