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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91.ST05.01. Herbert Simon의 ‘컴파일링’

사람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에는 기묘한 역설이 하나 숨어 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완벽히 숙달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춘다는 사실이다.

Mark Weiser 박사는 그의 글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1)에서 기술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사라짐’을 제시했는데, 그는 이 심리학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Herbert Simon의 ‘컴파일링(Compiling)’이라는 개념을 빌려왔다. Herbert Simon이 정의한 ‘컴파일링’이란, 처음에는 세심한 주의력과 의식적인 관심과 집중을 요구하던 대상이 학습과 이해를 거치며 ‘의식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자동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처음 보는 강렬한 빨간색 버튼이 벽에 걸려 있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주목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버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어떤 의미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두뇌가 그것을 그저 배경의 일부로 처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하면, 앞을 쳐다볼 사이도 없이, 모든 신경이 핸들, 페달 이런 것에 쏠리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페달의 오른쪽, 왼쪽의 밟는 느낌, 핸들의 미세한 흔들림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만, 그런데 일단 숙달만 되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전면을 보고, 또 주위를 둘러보며 풍경을 즐긴다. 특별한 관심이 사라진 자리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들어차는 것, 이것이 바로 컴파일링의 마법이다.

Herbert Simon은 이 개념을 컴퓨터 사이언스의 원리에서 착안했다. 프로그래머가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고급 언어(High-level Language)’로 코드를 작성하면, 컴퓨터는 이를 실행하기 직전에 기계가 즉각 처리할 수 있는 ‘기계어(Machine Language)’로 변환한다. 이 변환 과정을 바로 컴파일링이라 부른다. 기계어는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실행 속도만큼은 압도적으로 빠르다. Herbert Simon은 사람의 마음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무엇인가를 충분히 익히면 사람의 두뇌는 단계별로 생각해야 하는 번거로운 지식들을 일종의 ‘정신적 기계어’로 컴파일하여 ‘내재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재화는 사람들의 인지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체스의 그랜드 마스터가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내거나, 베테랑 운전자가 브레이크의 압력을 계산하지 않고도 부드럽게 멈춰 서는 것은 이미 그 과정들이 백그라운드에서 매끄럽게 작동하는 코드로 변환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람들의 의식적인 주의력이라는 한정된 자원은 운전 중 장 볼 목록을 생각할 정도로 더 높은 차원의 다른 일에 할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발끈을 매고, 양치질을 하고, 글자를 읽는 행위까지, 한때는 온전한 주의력의 집중이 필요했던 이 모든 일들은 이제 ‘덩어리 경험(Chunking Experience)’이 되어 의식 너머로 사라진다. 세부 과정은 생략되고 오직 결과만이 남는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Mark Weiser 박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Ubicomp의 미래를 보았다. 그가 강조한 “가장 심오한 기술은 사라지는 것”이라는 비전은 Herbert Simon의 컴파일링 개념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기술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결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게 될 때, 즉 기술이 사람 마음속의 배경으로 ‘컴파일링’ 될 때 비로소 인간은 기술적 마찰 없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Mark Weiser 박사가 자신의 글에서 Herbert Simon의 용어를 인용한 것은, 전문가들이 복잡한 사고를 자동화된 패턴으로 축소하여 효율을 얻듯, 미래의 기술 또한 사람의 인지 구조와 공명하여,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 사라진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숙달이며, 기술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이다.

(1)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Mark Weiser,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

■ Herbert A. Simon, https://en.wikipedia.org/wiki/Herbert_A._Simon

■ Herbert Simon, https://thedecisionlab.com/thinkers/computer-science/herbert-simon

■ Herbert Simon, https://www.chessprogramming.org/Herbert_Simon

■ Hierarchy and History in Simon’s “Architecture of Complexity”, PE Agre, 2003, https://pages.gseis.ucla.edu/faculty/agre/simon.html

■ Models of My Life, Herbert A Simon, The Rabbit Hole, Feb 22, 2024, https://blas.com/models-of-my-life

■ Bounded Rationality, G Wheeler, 2018, https://plato.stanford.edu/entries/bounded-rationality

■ 50 Years as Carnegie Mellon University, Herbert Simon, https://www.cmu.edu/50/founder-stories/story-simon.html

■ A Life of the Mind: Remembering Herbert Simon, Apr 22, 2001, https://www.psychologicalscience.org/observer/a-life-of-the-mind-remembering-herb-simon

■ Calm Tech, Then and Now, John Seely Brown, https://medium.com/re-form/calm-tech-then-and-now-deddb05697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