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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25.QU.04. 90년대의 예언과 현대의 언어가 충돌하는 이유

Mark Weiser 박사가 살던 시대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스마트폰도, 사물인터넷(IoT)도, 공간 컴퓨팅이나 클라우드 지능은 물론 대규모 센서 네트워크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Mark Weiser 박사는 기술이 일상의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미래를 꿈꿨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마주한 삶의 복잡성이 이토록 거대해질 줄은,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 그 자체가 통째로 ‘연산 가능한 대상’이 될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현대 기술 발전의 핵심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어떤 것, 즉 Mark Weiser 박사가 직감은 했으나 생전에 미처 다 목격하지 못했던 바로 그 근본적인 변화말이다. Mark Weiser 박사의 시대에 컴퓨팅이란 대개 개별 컴퓨터 디바이스, 데스크탑이나 초기 노트북, 혹은 실험적인 디바이스라는 범주 속에 갇힌 활동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선 물리적 세계는 본질적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방은 조잡한 스위치 없이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했고, 사물은 서로 소통하지 않았으며, 벽과 바닥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무생물일 뿐이었다. 공기 중에는 그 어떤 데이터도 전달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XEROX PARC의 한 사람은 컴퓨팅 기술이 주변 환경 속으로 녹아 드는 미래를 그려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주변 공간 그 자체가 스스로 컴퓨팅의 주체가 되어 작용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다. 공간은 디바이스를 놓아두는 ‘장소’일 뿐, 지능의 일부로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환경은 Mark Weiser 박사가 상상했던 그 경계선을 이미 넘어섰다. 이제 공간은 정보가 끊임없이 흐르는 거대하고 정교한 무수한 수의 투과성 있는 막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 때 그저 사람들을 둘러싼 외부 공간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는 조용히 하나의 거대한 분산된 컴퓨팅 구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벽은 진동과 압력을 감지하고, 조명은 사람이 있는지 뿐만 아니라 그날의 기분까지 읽어낸다. 바닥은 걸음걸이의 패턴을 분석하고, 자재 속에는 얇은 박막 회로가 숨겨져 있기도 한다. 온도, 소리, 몸짓, 동작 그리고 공간의 배치까지도 실시간으로 측정되고 해석된다.

MASERINTS가 포함된 MICRONELIS 같은 보이지도 않는 초소형 디바이스들은 사람의 주변뿐만 아니라 공간 모든 필요한 곳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그것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가젯이 아니라,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컴퓨팅 포스트처럼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 주변의 공간은 더 이상 사람들을 위한 수동적인 공간이 아니다. 센서와 프로세서, 그리고 작은 디바이스들이 살아 숨 쉬며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공간 그 자체가 되었다.

공간이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단순히 디지털화되거나 자동화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에 오직 인간의 지각 능력으로만 느낄 수 있었던 그 미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이제는 공간이 스스로 읽어내고 해석하며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변 공간 내에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알아채는 것은 단순히 마이크가 볼륨을 감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벽면과 공기의 압력 변화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를 통해 소리의 위치를 정교하게 계산해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몸의 무게중심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전자기장이 미묘하게 일렁이는 것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의자, 탁자, 문과 같은 평범한 사물들조차 이제는 이 거대한 연산이 가능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아주 작은 신호에 담아 끊임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Mark Weiser 박사는 컴퓨터가 전기처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평범해지는 세상을 예견했다. 하지만 Mark Weiser 박사조차도 미처 다 내다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 주변의 모든 표면과 공간, 그리고 사물의 재료 그 자체가 연산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탭, 패드, 보드처럼 크기가 다른 디바이스들이 세상을 채울 것이라 보았지만, 현대의 임베디드 설계가 도달한 거의 제로에 가까운 크기의 초미세 연산 단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또한 네트워크의 방대한 규모나 센서의 극소형화, 그리고 공간 지능 기술이 결합되어 컴퓨팅 기술이 아예 건축 구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수준까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의 초기 논문이나 1991년 ‘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The Computer for the Twenty-First Century(1)를 다시 읽어보면 Mark Weiser 박사는 수많은 디바이스가 세상 곳곳에 심어지는 미래를 그렸을 뿐, 세상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산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미세한 차이가 사실은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낸다. Mark Weiser 박사가 상상한 환경은 그저 조용한 디바이스들로 가득 채워진 장소였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 그리고 MASERINTS와 같은 시스템 안에서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디바이스이다. 이제 연산능력은 공간 속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덕분에, 시스템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 사람과 사물, 움직임과 의도 사이의 관계를 과거에는 오직 사람의 직관으로만 감지할 수 있었던 그 미세하고 정확한 영역까지 모델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스마트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은 마치 온몸에 신경망이 퍼져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거의 생리적인 수준으로 거주자와 반응하며 함께 호흡하는 존재가 되었다.

결국 Mark Weiser 박사는 컴퓨터가 일상 속에 스며드는 모습은 예견했지만, 일상 그 자체가 하나의 연산 가능한 체계로 탈바꿈할 것까지는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 안에 놓인 유용한 디바이스들을 상상했을 뿐, 그 방 그 자체가 스스로 지각하고 인지하고 반응하는 거대한 지능의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변화, 즉 ‘공간 속에 배치된 디바이스’에서 ‘디바이스처럼 작동하는 공간’으로의 전환이 MASERINTS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에 대한 자각, 안전 예측, 감성적인 세심함, 그리고 거추장스럽지 않고 거스르지도 않는 그런 지원과 도움 같은 가치들이 단순히 컴퓨터 디바이스와의 간단한 상호작용의 수준을 넘어, 사람들의 삶, 그 자체와 같은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간이 스스로 연산하고 반응하는 세상에서, 기술은 단순하게 사람들 곁을 따라다니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마치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고 마시는 차분한 공기처럼 사람들 삶의 일부가 되어, 숙련된 직관만큼이나 섬세하게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러면서도 결코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력을 가로채는 법 없이, 언제나 백그라운드에서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렇게 Mark Weiser 박사의 비전은 놀라울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으나, 결코 완벽한 설계는 아니었다. 그의 비전은 어디까지나 위대한 시작이었을 뿐, 최종적인 구조에 대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오늘날 MASERINTS와 같은 시스템이 Mark Weiser 박사가 그토록 꺼려했던 ‘에이전트’, ‘집사’, ‘동반자’, ‘함께 사는 것’, ‘디지털 쌍둥이’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얼핏 Mark Weiser 박사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이 MASERINTS와 같은 환경에서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Mark Weiser 박사 시대에는 당연히 피할 수밖에 없었던 이 표현들을 왜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그 모순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1) The Computer for the Twenty-First Century, Mark Weiser, Scientific American, pp. 94-10, Sep.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