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란 의미는 현재 존재하면서 어디에나 있다는 뜻으로 사전에 나와있고, 기술의 발전 측면에서 의미를 이해한다면,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기술 발명품들이 생겨나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와서 생활의 한 부분이 되고 있는 현상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 같은 것을 보면, 예전에는 특별한 사람만 가지고 다니는 줄 알았던 무전기 같았던 휴대폰 이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의 손 안에 있는 일상 속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술적 산출물이 되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의 ‘유비쿼터스’란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휴대폰과 같은 디바이스나 장비, 즉 하드웨어적인 것이나, 인터넷과 같은 기술적인 발명들 보다는 이러한 기술들과 사람들과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호작용에 Ubicomp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유비쿼터스한 ‘전기’
다른 예로써, 사람들이 항상 사용하고, 늘 주변에 있어야 하는 ‘전기’, Mark Weiser의 논문 외에도 많은 논문에서 Ubicomp을 설명하면서 예로 등장하는 것이 ‘전기’이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거의 없다. 별도로 조사를 하지 않아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전기’가 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기는 이렇게 어디에나 있는 것이 되었다. 이 ‘전기’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고, 너무 편재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전기’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기’라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스위치를 올리면 그냥 빛이 들어온다는 정도로만 의식하고 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고도 접하는 ‘전기’의 예로 들자면, 가장 가까이 있고 흔한 것이 빛을 내는 전구가 아닐까? 물론 아침에 빵을 굽는 토스터기도, 젖은 머리카락을 말릴 때 사용하는 헤어드라이어기도, 또한 자동차에는 휘발유도 필요하지만, 전기로 인해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들이 작동되기도 하고, 전기로만 운행하는 전기자동차도 점점 흔한 기술적 산출물이 되었다. 이렇게 흔하다 못해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진 것은 전등도 아니고, 토스터기도 아니고, 헤어드라이어기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니고, 바로 ‘전기’이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호롱불로 벗삼아 책을 읽던 시절에 ‘전기’라고 하는 존재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귀함도 알 수가 없었겠지만, 그 귀함을 모르는 것은 아주 없었을 때나, 너무 흔하게 된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처음에 전기가 우리나라에 공급될 때는 전기라는 자체가 아주 귀하게 여겨졌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구나 마음대로 전기를 가질 수 있었던 그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한 전기가 공급되는 곳은 아마 아주 특별한 장소였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는 아무나 쉽게 전기를 가지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고,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이 전기가 되었다. 전기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그 역사를 생각하기 전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그냥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전기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하루를 살면서 ‘전기’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데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깊게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비쿼터스’하다는 의미가 조금은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이전에 전기가 아주 귀했을 때, 그러니까 아주 없었을 때가 아니라, 있기는 있는데, 아주 귀했을 때, 지금처럼 ‘전기’라는 것이 의식 속에서 사라질 정도로 흔하게 될 줄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제는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전기’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도 않고, 어디에나 있는 것이 ‘전기’이고, 또 남아 도는 것이 ‘전기’가 되었다.
뒤집어서 말하면 ‘전기’가 남아돈다는 것조차 생각하지도 않아도, 아무 곳에서 전기가 있다 보니, 그냥 ‘전기’가 내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점점 그의 귀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소홀히 하게 되었고, 항상 주변에는 있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전기’의 공급 자체 보다는 ‘전기’를 이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다른 서비스를 더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기가 활용된 다른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서비스’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전기’가 귀했을 때는 ‘전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기능에서 ‘서비스’의 개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기’가 흔해지고, 사람의 의식에 자리잡지 않게 된 지금은 그 ‘전기’를 이용한 서비스의 개념은 그 ‘사용자’의 필요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인데, ‘전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기능에서 ‘서비스’의 개념이 시작된 것을 잘못된 서비스의 시작이고, MASERINTS와 같은 디지털 공간이 사람들에게 다가올 때도 이 서비스의 개념을 적용하는 오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사용자 혹은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의 요구와 필요로부터 반드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와! 우리 고장에도 이제는 전기가 들어온다고 하니 기쁘다!”, “우리 집에는 언제나 전기가 들어올까?”, 이렇게 전기라는 자체가 이야기 거리가 되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전기를 간접 조명으로 분위기 있게 설치를 하고, 벽에 설치된 전기 스위치가 오히려 인테리어를 망친다고 스위치를 없애려고 한다. 전기 자체보다는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하여, 보다 효과적인 활용, 즉, 살아가는데 전기가 기쁨의 하나가 되도록 존재 이상의 서비스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서비스의 시작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전등을 밝힐 때 그냥 스위치를 올리면 전등이 당연히 켜질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스위치만 찾는다. “나는 지금 전기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서 전기가 필요하고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도 전기가 필요하고,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전기가 필요하다. 전국의 모든 곳, 건물 안, 건물 밖,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골목길, 학교 등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곳에 전기가 있어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벽과 천장을 보면, 그 사이를 지나는 모든 전선에 전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벽 속으로 무시무시한 전기가 엄청나게 지나가고 있는 그런 장소 안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Mark Weiser 박사는 표현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하게 되어 의식 안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기 줄이 밖으로 주렁주렁 매달려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에 길게 늘어진 곳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곳이 있겠지만, 요사이 대부분 도심지의 건물에 전기 줄이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니 전기는 더더욱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전기’를 의식할 때가 있다. 갑자기 데스크탑 컴퓨터가 작업 도중에 꺼졌다든가, 재미있는 연속극을 볼 때 전기가 나가면, 굉장히 화가 나겠지만, 하여간 그 순간에는 ‘전기’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전기가 나갔다”라고 표현한다. 또 잘못 만져 감전이라도 되면, 그때는 확실하게 전기를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전기를 잘 조정하면, 사람들에게 책을 볼 수 있는 밝은 빛이 될 수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밤에 다닐 수 있도록 ‘헤드라이트’의 빛이 되기도 하고, 또 아침 빵을 구울 수 있도록 토스터기의 열선도 뜨겁게 달구어 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일상 속에 많은 기술 발전의 산출물들이 전기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기의 존재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평가해 보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아주 흔하게 된 지금까지 일정한 단계를 거쳤다고 생각될 수 있다. 전기 외에도 과거에는 존재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흔하게 된 역사적인 기술적 산출물들이 사람들 주변에 많이 있는데, 과연 그러한 존재들도 전기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