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논의되는 ‘새로운 세상’은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세상을 의미한다.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기술적 발전의 속도는 사람들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이나 기술적 수준에 의한 사회의 많은 변화는 명확한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순간에는 항상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 센서 기반 환경이 서서히 보편화된 것처럼 서서히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히 언제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고는 무엇인가 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은 조용히 변화한다. 디지털 공간은 더 스마트해지고, 체계는 더욱 통합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되면, 사람들은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항상 그런 기술을 따라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변화에 맞춰 성장하기보다는, 알아차린 이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변화가 느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변화는 이처럼 빠르지만 미묘하다.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고 익숙해지지만,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는지 깨닫게 한다.
어떤 종류의 ‘새로운 세상’이 사람들의 삶에 이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말로만 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해 주는 그런 세상일까? 오랜 전에 1986년에 “The Fly”라는 공상과학 영화가 있었다. “스타트렉”이란 드라마도 있었다. 여기서 ‘트랜스포터’를 이용해서 순간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2009년 작인 “아바타”에서는 다른 행성에서 자신의 유전자로 조작된 신체를 원격으로 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미래의 기술들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순간 이동이나 원격 존재와 같은 능력을 포함할까? 이미 VR, 원격으로 조정가능한 로봇, 두뇌와 컴퓨터 인터페이스 같은 기술은 이런 아이디어들의 일부를 현실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불확실성과 기회를 동시에 안고 있을 수도 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바람직한 지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세상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타인이 추측해서 만들어낸 “미래의 그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그 세상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이 만들어 낸 예측은 인상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사람들 자신의 미래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미래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세상 안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인데, 그러한 세상은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 않았기에, 현재로서는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경우 ‘대체경험’이 필수적이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각적 표현을 보고, 그 세계의 일부와 유사한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시작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상상 속 세계가 사람들 자신의 ‘간접경험’의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대체경험’을 의미 있는 이해로 전환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통찰력 있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경험이 완전한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분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을 형성하는 데 도움은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진정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관심이나 주의력이 없다면 이러한 인상은 금세 사라져 먼지 쌓인 구석에 버려진 잊혀 진 물건처럼 기억에서 희미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자신의 삶을 기술에 맡기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Ubicomp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디바이스나 극적인 디스플레이로 정의되지 않는다. 기술 트렌드의 미묘한 발전과 그것이 일상생활에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기술은 보통 갑작스럽고 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공지능, 스마트 디바이스, ‘공간 컴퓨팅’처럼 조용히 변화하며 점차 사람들의 삶에 녹아 든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일상의 일부가 벌써 되어 있는 것이다.
변화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고,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하나의 발명품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혁신들이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 즉 쇼핑, 소통, 학습, 심지어 휴식까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 주변의 세상을 미묘하게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Ubicomp도 새로운 기계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에 지능을 조용히 심어 놓고, 디지털 도구들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거나 사람들에 의해 관리될 필요 없이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그런 기술이나 디지털 도구들이 사람에게 적응하는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사람들의 주변 환경이 의식적인 주의력을 요구하는 기술적인 결과물로 가득 차게 되면, 그 결과물들은 압도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들이 백그라운드에서 조용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면, 더 이상 의식을 잡게 되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기술들이 제공하는 이점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혜택은 사람들의 삶을 더 단순화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예상하지 못한 시공간적 여유를 제공받을 수 있다. 관찰하고, 시뮬레이션 해보고, 또는 깊은 상상을 통해 그러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그런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삶에 기반을 두면서도 마음속으로 그 미래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사람들은 그 마음 속의 세상과 친숙해지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중요하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의 주변 환경이 점차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 또한 변화할 것이다. 신중하게, 그리고 미리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면 압도당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리 적응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내가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래서 내 일상적인 생활이, 그 안에서의 삶의 흐름이, 그 안에서의 모든 나의 행동이 이상하리만큼 단순하게 변한다면,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이미 도래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그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이미 동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 디지털 공간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번잡하고 거추장스럽고, 화려하고, 신기한 것들만 있다면, 그것은 그냥 새로운 기술적 산출물로 뒤덮인 미래가 아닌 내 말초신경만을 건드리는 속이 검은 디지털 공간들의 알고리즘에 붙들려 있는 “이상한 새로운 세상의 나”로 변해가면서 그 속 빠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