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이 온다!”라는 말을 들으면, ‘새로운 세상’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적절한지는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인가 계단을 뛰어 넘는 것과 같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대감을 가지고 반응하게 된다.
사람들은 분명하게 무엇인가 눈에 띄기를 바란다. 즉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것처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을 보기 위해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변화가 이미 주변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내 자신이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주변 세상만 바뀌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변화에 편승하여 한번 더 삶을 편하게 해줄 것 같은 기술적 산출물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아니다 싶으면 쉽게 버리고 그 흐름에서 내려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새로운 세상’의 도래는 극적인 변화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Calm Technology가 지향하는 그런 세상은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에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녹아 들어온다. ‘새로운 세상’을 정의하는 요소들이 사람들의 일상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변화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계속 기다리지만, 그것이 이미 자신들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기술적 산출물의 매뉴얼을 충분히 숙지했다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이 여겨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현재의 환경, 생각, 습관 그로 인해 가진 자신만의 꿋꿋한 문화에 너무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젖어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꿋꿋한 주장을 가지면서, 변화해야 하는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이 맞춰야 한다는 그런 어그러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고 그려보라고 하면,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지식과 개념과 기억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게 되므로 그 생각이 발산되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의미를 각 분야별로 나름대로 다르게 표현하려고 힘쓰고 있다. 정치분야, 기술분야, 종교분야 등 각 분야 별로 ‘새로운 세상’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또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문구나 단어들을 내 놓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해 자신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특별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설명하게 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입장과 상황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전문 용어를 개발하고 퍼트리면서 대중에게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와 이론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따르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여기 저기서 모두 수집하게 되고, 기사를 읽고, 설명을 듣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한 후, 이 ‘새로운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대중들이 가장 힘든 부분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과정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도대체 새로운 세상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세상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컴퓨터과학계 분야의 움직임
컴퓨터과학계 분야에서 Ubicomp이라는 용어는 오래 전부터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Calm Technology”라고도 불리는 이 용어는 끊임없이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백그라운드 속으로 사라지는 컴퓨팅의 Vision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된 기술의 모든 개념은 적응적이고 직관적이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더욱 부합하는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새로운 디지털 공간은 단순히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디자인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습관이 들은 그런 생각에 짜맞춰지는 그런 공간의 의미도 아니다. 사람들의 근본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생활과 행동 방식에 더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공간인 것이다. 이미 많이 뒤틀어진 사람들의 문화를 바꾸게 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새로운 습관에 맞춰 조정되고, 사람들이 사람으로써 존중을 받기위해 기대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며, 복잡한 지시나 끊임없는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을 빼앗길 필요 없어진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는 대신, 기술이 사람들을 배우는 격이 된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서비스 받을 주인공의 일상 패턴에 따라 조명이나 온도를 조절하는 그런 환경, 또 서비스 받을 주인공의 목소리 톤이나 제스처를 이해하는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공간이 서비스 받을 주인공에게 적응하려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고도 그냥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사용자’가 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사용법을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직관을 가지고 살면 된다. 적응은 디지털 공간이 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비스 받을 주인공에 적응하는 디지털 공간이라 서비스 받을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해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그 공간에서의 삶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MASERINTS도 바로 그런 방향을 지향하고, MASERINTS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Ubicomp의 세계는 왜 진정한 ‘새로운 세상’으로 여겨져야 할까?
그리고 컴퓨터과학계 연구 방향이 Ubicomp의 본질적 개념에 따라 발맞춰 변화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Ubicomp을 통해 만들어진 디지털 공간은 진정으로 나의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이나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개 상당한 변화를 수반할 것이라고 계속 그렇게 생각한다면, 만약 컴퓨터과학계가 지금의 길을 고수하고 효율성이나 성능 향상에만 집중하며 익숙한 방식으로만 발전한다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Ubicomp의 성장은 과감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때에만 혁신적이라고 보아야 할까?
Gordon Moor 박사의 Moore’s Law(무어의 법칙)와 같은 추세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인 기술 발전은 인상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은 단순한 성능 향상 이상을 요구한다. 이는 기술에 대한 디자인과 그 기술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프레임워크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Ubicomp이 구상하는 디지털 공간은 단순히 기존 기술의 확장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람과 주변 공간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컴퓨팅 시스템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더 심층적인 변화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