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LS004.02. 떠오르는 기억들의 알 수 없는 연관성

어린 시절 가졌던 생일잔치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날처럼, 과거의 특별한 날을 기억해 본다. 처음에는 단 하나의 선명한 기억처럼 느껴지지만 그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그 하나의 기억 속에서 노를 저었던 그 호숫가도 다시 생각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밤의 해변도 생각나고, 음식을 사 먹었던 외국의 길가 레스토랑, 또 갑자기 여행 가방이 무거워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두려움이나 기쁨의 순간들도 기억이 난다.

이렇게 그 하나의 기억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더 많은 그 기억 속에 있는 작은 경험들이 떠오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든 기억이 같은 시간이나 장소에서 있었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동시에 불쑥불쑥 솟아오르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그 기억이나 경험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간다는 것도, 언제까지, 얼마나 더 깊은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계속 연결되어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럴 때는 생각나는 기억들을 순서대로 기록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이 더 많은 기억이나 경험을 생각나게 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이렇게 기억을 계속해서 생각해 낼 때, 그 기억들 중에 한 부분을 별도로 택해서 선택하고, 종이 위에 그 선택된 경험만을 놓고 그 기억 부분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부분을 선택하게 되면 기억이란 시간의 흐름이 같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 시작과 끝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부분의 경험을 따로 적어 놓고 시작하는 것도 분리되는 ‘조각경험’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조각경험’이 가지고 있는 더 작은 분리된 ‘조각경험’과 ‘조각경험’ 사이,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어와 단어 사이, 표현과 표현 사이, 그 당시의 주변의 맥락적인 요소들, 그 때 느꼈던 감정들, 눈으로 본 것들, 들렸던 소리들,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그것과 연결되는 의식적인 의미 등을 적어 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의 경험을 더 깊이 파고들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두뇌를 일부러 깨워서 기억하게 하고, 생각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두뇌는 결합하기를 원하지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해 볼 경험으로는 먼 기억 속에 있었던 일들, 경험했던 일들, 또 커다란 ‘덩어리 경험’이 된 그런 경험도 있겠지만, 오늘 아침에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던 경험도 선택될 수 있다. 가까운 과거라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그러면, 아침 식사와 관련되어서는 어떤 경험들을 불러올 수 있을까? 아침을 먹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같이 식사를 했는지, 이런 것들이 생각날 수 있다. 그런데 매일 아침을 먹는 경험을 하지만, 어떤 부분은 기억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식사로 밥을 먹었다면, 얼마동안 먹었는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아침 식사를 했는지 모든 과정이 생각이 날까? 먼 과거의 기억도 아닌데, 명확하지 않은 것은, 매일 하는 아침식사가 이제는 또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 경험’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하는 아침 식사이기 때문에 상세히 기억날 것 같았지만, 어떤 부분은 ‘덩어리 경험’이 되어 버려 뭉뚱그려졌고, 사소하게 바뀌는 부분만이 새롭게 여겨지는 경험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지금 내 두뇌가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 나에게 깊은 느낌과 자국을 남긴 기억(경험)과 그런 기억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생긴 ‘덩어리 경험’만이 있는 것 같다. 매일 먹는 아침 식사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밥을 먹게 되었는지 기억이 통 나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것도 그냥 ‘덩어리 경험’ 속에 조그만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의 연속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하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풀어야 할 문제인데, 반복적인 문제이다 보니, 약간의 작은 변화만 있었을 뿐이지, 나머지는 습관이 되어 문제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이를 닦을 때도 다른 생각을 하며 무심코 이를 닦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역시 이를 닦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너무 습관이 잘 되어 있어 머리로는 다른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이를 닦아도 될 정도로 ‘덩어리 경험’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안에 무엇이라도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려면 수리에 맞는 도구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리가 빨리 잘 끝나기 때문이다. 도구가 망치와 드라이버 중 하나만 있다면, 수리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게 된다. 그래서 도구가 다양하게 많아야 어떤 수리도 가능할 수 있듯이, 두뇌에도 가져다 쓸 지식이 많아야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에도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살면서 어떤 문제와 마주칠 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새로운 지식을 두뇌에 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두뇌 속에 원래 가지고 있던 지식이라도 잘 정리해서 덩어리로 된 기억(경험)도 다시 풀어서 많은 종류의 작은 기억(경험)으로 만들어야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지식거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지식거리가 많아지면 새롭게 조합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문제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덩어리 경험’은 저절로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분리할 수 있더라도 그 이상 깊은 속까지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또 어려운 점은 이렇게 머리로 분리한 ‘조각경험’들을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지식으로 머리 속에 어떻게 계속 남아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모든 ‘덩어리 경험’들을 모두 쪼개서 ‘단위경험’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단위경험’들을 기억하고, 그 ‘단위경험’들을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조합해서 만들어진 ‘간접경험’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직접경험’들, 또 ‘대체경험’들 이 모든 것을 잊지 않고 항상 두뇌에 가지고 있다면 두뇌는 본질적인 욕구 때문에 계속해서 경험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러면 점점 ‘간접경험’들은 늘어나서, 이 모든 경험들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다면, 어떤 문제가 와도 그렇게 당황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역시 이 문제도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두뇌 속에 계속해서 놔두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뇌는 쉴 시간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험을 발견하고 또 창출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경험의 발견과 창출은 왜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