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자주 생각을 하게 된다. “볼 수가 없어 답답한데, 정말로 나의 두뇌가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단편화 된 ‘조각경험’들을 연결하여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뇌가 하나의 ‘조각경험’과 또 다른 ‘조각경험’을 연결할 때 Filler라고 하는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메워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과연 이 부분은 얼마나 왜곡될 수 있을까?
가끔은 이미 기억 속에 있는 여러 경험들이 마치 ‘덩어리 경험’으로 느껴진다. 생각 없이도 할 수 있는 ‘행동 덩어리’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덩어리 경험’이 되기까지 결합된 하나의 ‘조각경험’과 또 다른 ‘조각경험’ 사이에 메웠던 부분들은 왜 왜곡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마 달인처럼 ‘덩어리 경험’이 되기 위해 수많은 반복으로 그 왜곡된 부분이 수정되기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왜곡된 부분이 자신에게만 올바른 기억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왜곡된 경험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왜곡되든 아니든 메우게 되는 부분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나’만이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구성하게 될 작은 퍼즐과 같은 조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 경험’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거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직접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간접경험’을 가지고 싶다면 그 ‘덩어리 경험’들을 분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끊임없이 가지게 된다. 그런데, 경험이라는 것이, “아! 내가 그런 적이 있었지?” 그렇게 생각한다고 두뇌에서 알아서 작은 ‘조각경험’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뇌는 자꾸 ‘덩어리 경험’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분리시키는 작업은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 규칙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발견된 ‘덩어리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종이에 적고, 그 경험의 시작점과 끝을 결정하고, 그 과정을 적어 보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어떤 경험이든지 10~20단계만 있으면 웬만한 경험의 수행 단계가 다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놓친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경험들을 다시 발견하고 다시 그 과정에 놓쳤던 경험을 다시 집어넣으면 10~20단계면 끝날 것 같았던 경험이 100~200단계,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각 나누어진 단계마다 그 경험이 가지고 있는 그 순간 주변의 맥락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주변의 맥락적 요소는 그냥 그 ‘조각경험’의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도 있다.
이렇게 분리시키면서 ‘조각경험’이나 ‘단위경험’이 나올 때까지 분리시키는 훈련을 내가 스스로 종이에 적어보면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시키는 훈련만 하면 조각난 경험을 인지한 두뇌가 자동으로 그 조각들을 재결합해서 새롭고 ‘간접경험’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설명한 내용은 인지과학과 심리학에서 스키마(Schemas)와 청킹(Chunking)을 설명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키마(Schema)는 두뇌가 경험을 체계화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정신적 틀과 같다. 머릿속에 있는 청사진이나 템플릿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이 존재하면 매번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 들어가면 이미 이제 앞으로 펼쳐질 경험의 스키마가 있다. 예를 들어, 아마도 어떤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다가 음식이 나오면 음식을 먹고, 그리고 나갈 때 계산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음식을 먹을 때 내가 어떻게 먹을 것이라는 장면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이런 저런 단계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억 속에 덩어리로 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덩어리가 된 경험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스키마와 매우 유사하다고 하는 것이다.
때로는, 단계별 기술에 더 가까울 때는 청킹(Chunk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타이핑이나, 피아노 연주, 심지어 신발끈 묶기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한 번에 배우기에는 너무 방대하거나 순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서 두뇌는 작은 동작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는다. 예를 들어 “신발 끈을 교차를 시킨 다음, 고리를 만들고, 다시 교차를 시키고 잡아당기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키마는 큰 그림의 프레임워크에 더 가깝고, 청킹은 복잡한 작업을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인데, 스키마가 지도라면, 청킹은 실제로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발걸음과 같다고 보면 된다.
두 표현 모두 두뇌가 여러 작은 세부 사항들을 하나의 더 큰 경험 뭉치로 압축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스키마나 청킹은 ‘단위경험’과는 다른 의미의 경험 뭉치이고, 크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조각경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 대신 전체 과정을 매끄럽게 기억하거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처음 10~20단계 이하로 생각되는 이유가 그런 과정들이 스키마와 같은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런 곳에 바로 생활하기는 편하지만, 두뇌는 굳어 질 수 있는 함정에 빠져 있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스키마나 청킹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심리학에서는 지식과 기억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설명할 때 스키마를 사용하고, 작은 정보 조각이나 단계들이 어떻게 모여 두뇌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구성되는지 설명할 때는 청킹을 사용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스키마가 지도라면, 청킹은 실제로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발걸음과 같듯이, 스키마는 이해를 위한 큰 프레임워크라 보면, 청킹은 작은 단계들을 사용 가능한 단위로 그룹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