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off와 Johnson의 저서 『Philosophy in the Flesh(1)』(1999)은 대담한 주장을 내세운다. 사람들의 정신은 신체와 분리되어 공중에 떠다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즉 현실과 분리되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라 신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고 신체 자체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신체나 감각, 감정 없이도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정신이 아니며, 로봇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사람들의 정신은 주변 세상을 움직이고, 느끼고, 감지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분이 우울해서 처지고 있어!”라고 한다면, 신체에서 나오는 물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하고 처질 때는 자세도 구부정하고 머리도 숙여진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와 사고 패턴은 신체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Lakoff와 Johnson은 이것을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2))라고 부른다. 두뇌는 계산기처럼 추상적인 기호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몸이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감지하고, 느끼는 지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도출해낸다는 것이다. 즉,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다는 데카르트적 주장과 달리 정신은 몸과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이며, 몸이 생각 자체의 발달 방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개념, 은유, 추론 패턴은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구축되며, 신체가 없다면 정신은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세 가지 주요 요점은 첫째, 정신은 본질적으로 체화(Embodied)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추론하고, 상상하는 방식은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예를 들어, “오늘 기분이 들뜨고 좋아!” 또는 “상황이 나빠져 내 몸이 처지고 있어!”라고 말할 때, 이러한 은유는 수직적인 움직임에 대한 신체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둘째, 생각은 대부분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추론의 상당 부분은 의식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패턴에 의해 유도되는 자각(Awareness) 아래에서 일어난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가장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정신 생활의 많은 부분이 놀랍게도 자각의 표면 아래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신중하게 선택지를 따져보고 결정을 내리는 의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정신은 스스로 압박 받는 것을 막아주는 학습된 습관, 또는 두뇌가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적인 속임수 같은 것이나 단순화된 사고방식, 그리고 학습된 일상에 끊임없이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빨간 신호등을 보면, 모든 세부사항을 분석하고 그러는 대신에 그냥 멈춘다. 이는 두뇌가 경험을 통해 익힌 어떻게 보면 지름길인 것이다. 익숙한 것에 직면할 때마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것은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르는데, 복잡한 세상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도와주는 정신적인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연습해서 자동적으로 익숙해진 행동이나 사고 패턴들이 있다는 것이다. 신발끈을 묶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양치질할 때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각 단계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두뇌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루틴으로 저장해 둔다. 이것이 ‘덩어리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사람들이 모든 작은 행동을 의식적으로 계획해야 한다면, 사람들의 정신은 너무 많은 정보로 가득 찰 것이며, 모든 일상에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학습된 루틴은 정신적 에너지를 확보하여 매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는 대신에 새롭거나 중요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4).
또 다른 예를 들면,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갈 때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일인데, 무릎의 각도나 각 걸음의 타이밍을 의식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두뇌가 오랜 연습을 통해 정교하게 조정한 무의식적인 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맞춰야 할 그런 요소들을 맞추며 움직인다. 말을 할 때도, 머릿속에서 문법 규칙을 훑어보지 않아도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이는 무의식적인 패턴이 백그라운드에서 복잡한 작업을 처리하고, 의식적인 마음은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자동성(Automaticity)”의 예이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성이 아니라 효율성이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빙산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수면 위의 작은 부분은 의식적인 사고를 나타내는 반면, 수면 아래의 거대한 덩어리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나타낸다. 과거 경험, 반복적인 연습, 그리고 감정적 반응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숨겨진 과정들이 대부분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사람들이 자각하기도 전에 결정을 내리고, 반응을 형성하고, 심지어 추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의식적인 패턴에 대한 이러한 의존은 결함이 아니라, 두뇌가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식이다. 지각하는 것, 기억하는 것, 행동하는 것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의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금세 지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론을 이러한 백그라운드의 과정(“덩어리 경험”)에 맡김으로써, 마음은 내가 삶에 빠르고, 순조롭게, 그리고 더 적은 노력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내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결정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정신적 지름길들을 조용하고 보이지 않게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추상적인 사고는 대체로 은유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 사랑, 도덕성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신체적 은유를 통해 이해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말이 기대된다”, “과거는 뒤로하고”와 같이 사람들은 시간을 공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단편화 된 조각난 조각경험들을 다른 조합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간접경험’을 생성하는 DAGENAM의 개념적 과정은 어떻게 보면 Lakoff와 Johnson의 아이디어와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자체가 매우 구체화되기 때문에 DAGENAM은 단순히 “데이터”를 의미 없이 마구 섞을 수 없다. 사람들이 실제로 신체를 통해 경험하는 소리나 시각, 또는 감정 같은 감각적 흔적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은유를 사용한다. 언어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의 구조에서도 은유를 사용한다. 이것이 사람들의 정신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시간을 공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앞으로 다가온 주말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일정에 뒤처졌다”, 여기서 추상적인 것, 즉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왔다” 혹은 “뒤에 처졌다”는 등의 물리적 방향을 사용한다. 또한 두뇌는 신체의 구체적이고 친숙한 것을 빌려 이해를 표현하고 생각 하기도 한다. 따라서 생각할 때 은유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비유와 비교를 통해 이해를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두뇌는 단순히 논리만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경험에서 다른 경험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매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은유라는 것이 단순히 시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배우고, 상상하는 방식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George Lakoff와 Mark Johnson의 책 “Metaphors We Live By(3)”에서도 은유가 사람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신체적, 사회적 경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일, 시간, 정신 활동 및 감정과 같은 보다 추상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라고 제안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은유적이기 때문에 DAGENAM의 조각경험들을 다시 조합하여 결합하게 되면, 익숙한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은유나 ‘간접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지하는 것의 상당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DAGENAM은 사람이 그 메커니즘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채, 자각 아래의 단편화 된 조각경험들을 끌어내어 유용한 무엇인가로 엮어 냄으로써 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Lakoff와 Johnson은 DAGENAM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이유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인지 자체가 연속적인 완벽한 선과 같지도 않고, 본질적으로 매끄럽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은 조각조각으로 나타나 이미 연결되지 않은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 보낸 하루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모든 순간을 순서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것들, 즉 파도 소리 따로, 모래의 따스함도 따로, 자외선 차단제 냄새도 따로, 이처럼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들을 서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이 신체와 감각에 의해 형성되어 체화되어 있으며,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뇌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눈, 손, 심지어 자세로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슬플 때는 “기분이 안좋다”라고 말하고, 행복할 때는 “기분 좋다”라고 말한다. 감정은 신체적 감각과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비교와 은유적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DAGENAM은 단지 그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을 디자인된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DAGENAM이 경험의 단편화 된 조각경험을 다르게 조합하여 재결합한다는 아이디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이 DAGENAM의 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언급된 각주의 내용
(1) Philosophy in the Flesh, Lakoff and Johnson, 1999, https://en.wikipedia.org/wiki/Philosophy_in_the_Flesh
(2) Embodied Cognition,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iep.utm.edu/embodied-cognition
(3) Metaphors We Live By, George Lakoff, Mark Johnson, 1980, https://press.uchicago.edu/ucp/books/book/chicago/M/bo3637992.html, https://en.wikipedia.org/wiki/Metaphors_We_Live_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