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미래는 더 확장된 디지털 세상이 펼쳐질 수밖에 없고, 나는 그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오래 전에,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생겨난 내가 살아가야 할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 삶 속에 놓여 있었던 여러 개의 길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진리에 대한 갈구와 진정한 ‘디지털 세상’이라면 밑바닥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을 찾아가면서, 돌아돌아 이제 새로운 디지털 세상으로의 경계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 생각과 아이디어로 이해의 단계까지 오면서 생긴 습관은, 스스로 막아버렸던 생각들을 조금은 느슨하게 열어 펼치게 되었고, 고개를 들고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위해 한 발을 내딛기 전에, 우선 나의 주변을 둘러보고 놓친 것이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올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서의 내 자신과 주변의 변화, 이러한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주변 ‘공간’의 흐름에 관심이 점점 많아지게 되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대한 Storyteller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가게 되었다.
혼돈 속에서 발견한 Pattern
기억 속의 어떤 경험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알아차리리 못했던 것들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러는 중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아무리 봐도 세상이 주는 문제는 혼돈 그 자체 인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하게 얽히고 설킨 실뭉치 앞에 서 있는 것 같이 너무 복잡한 혼돈과도 같았다. 명확한 시작도 없었고 그렇다고 명확한 끝도 없이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삶, 사회, 혹은 기술을 번갈아 가면서 생각해 볼 때, 마음 속에서 어떤 문제들은 아주 강하게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마다 각자 이런 혼돈스러운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되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알고리즘’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적인 비공식적 단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단계를 거치게 되면서 혼돈이 질서로, 그리고 명료함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가지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엉켜버린 것 같은 실뭉치를 한꺼번에 다 풀어내려고 애쓰다가 끝내는 포기해 버리는 대신, 눈 여겨 보았던 하나의 작은 고리를 “혹시?”하며 살며시 잡아당겨 보게 된다. 다른 고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리고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혼돈스럽지 않고, 간과했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으며, 이해했다고 자만했던 것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진정한 명확성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자신만의 ‘정신적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지나가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앞만 보면서 이렇게 얽힌 문제의 단서와 실마리를 찾기 위해 바쁘게 고리를 모아 문제 해결의 작은 패턴을 발견하게 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동안 내 뒤에는 풀어진 실타래가 다시 얽힌 실뭉치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의 ‘정신적 알고리즘’을 힘이 들더라도 계속 수정하게 되고, 이미 발견된 패턴들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패턴들이 또 다른 얽힌 실뭉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보유한 ‘정신적 알고리즘’으로 기억 속에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 단서들과 패턴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을 나는 ‘경험의 발견(Discovery of Experience)’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그래서 후에 다시 설명이 되겠지만, ‘경험의 발견’을 꾸준히 하는 사람을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마트하다”는 것을 그저 “똑똑하다!”고 단순하게만 정의 내려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 스마트한 사람들은 ‘경험의 발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발견된 크고 작은 패턴들을 다르게 조합해서 또 다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패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경험의 창출(Creation of Experience)’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이 ‘경험의 발견’ 그리고 ‘경험의 창출’은 MASERINTS가 가지고 갈 매우 중요한 개념을 품고 있다. DAGENAM(Deep Assemblies of Genuine Awakenings in Memory and Insight)으로 시작된 이 개념은 MASERINTS의 두뇌 역할을 할 매우 중요한 개념을 품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본질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각경험’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경험의 발견’으로 인해 그 ‘조각경험’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두뇌가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의 발견’은 두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 ‘경험의 발견’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고, 이 작업을 컴퓨터 시스템에서 시도해 보려고 DAGENAM이라고 하는 개념적 디자인을 시도해 보았고, 이 개념이 MASERINTS의 두뇌로 적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의 본질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부분은 ‘경험의 창출’ 부분이 되는데, 이 또한 DAGENAM이라는 체계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간접경험’이 될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대 단위의 ‘경험 데이터베이스’가 MASERINTS의 유용한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 중에는 미래에 있을 경험들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들은 PTS의 필요와 요구를 예측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경험의 발견’이라면 나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Storytelling의 대상들이 나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Storyteller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경험들을 다시 발견하고, ‘경험의 창출’로 만들어진 ‘간접경험’으로 얻은 기억에 ‘직접경험’한 것처럼 깊은 자국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Storyteller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간접경험’은 ‘직접경험’에 대체될 수 있는 책을 읽는다든가, 멀티미디어를 통해 시각적 교육을 받는다든가 하는 ‘대체경험’과 구별되는 표현이다.
누구든지 ‘덩어리 경험’으로 달인이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숙달된 경험으로 굳혀진 삶의 ‘달인’이 되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사람들의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을 거치겠지만, 의식 안에서는 오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 경험’들만 있을 뿐이다. 그런 ‘덩어리 경험’들이 사람들에게는 손에 익고, 사는데 불편하지 않게 해주어서 그 덩어리를 잘 보존하려고 하겠지만, 스스로 창의적이고 스마트한 사람이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리고 좋은 Storyteller가 되고 싶다면, 그 ‘덩어리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달인’처럼 덩어리가 되어버린 경험들을 분리하는 경험의 발견과정을 거치고, 작은 ‘조각경험’들을 가지고 해결의 패턴들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10개 정도의 작은 ‘조각경험’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되었던 하나의 ‘덩어리 경험’이 다시 더 분리하기 시작하면 100~200개 혹은 그 이상의 더 작은 ‘조각경험’들로 나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새롭게 발견된 ‘조각경험’들을 가지고 다른 조합의 경험으로 결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경험을 MASERINTS에서는 ‘간접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의 ‘덩어리 경험’을 더 많이 분리해서 그 만큼 ‘조각경험’이 더 많아지면 당연히 조합할 ‘조각경험’의 수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두뇌 안에서 재결합된 ‘간접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서 그로 인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업그레이드된 ‘정신적 알고리즘’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디자인할 수 있는 자신만의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느껴 보기 위해서 그에 대한 만족스러운 이해는 자신의 ‘경험의 발견’을 계속함으로써 더 풍성하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명한 Storyteller는 새롭게 가지는 경험에 더해서 재결합된 ‘간접경험’을 엮어 놓아 그 생생함을 더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직접경험’하려는 생각은 삶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그 길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올바른 ‘정신적 알고리즘’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