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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08. 맥락, 경험의 정체를 결정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생각하면서 내가 그 경험을 할 때 내 주변에 대한 맥락이 달랐다면 나는 어떻게 다른 경험을 했을까? 내 행동이 달라졌을까? 내 감정이 달라졌을까? 이제 나는 나만의 경험을 발견하듯, 그 경험을 만든 나만의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스냅사진과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흐름이란 어떤 상황이 가지고 있었던 분위기와 그 분위기의 흐름, 주변 사람들과 그들의 움직임과 반응, 그 때 경험 속에 남아 있는 소리, 순간 순간의 타이밍 등 그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 흐름에 아주 작은 변화만 있어도 행동이나 감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항상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자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은 사람들 자신과 그 주변 맥락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 때 맥락적 요소들이 달랐다면 나의 경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고 묻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얼마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고 얼마나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맥락적 요소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내리는 선택을 좌우하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 있는 요소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흐르는 상황들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서서 “왜 그렇게 느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자문하는 것이다. 그런 성찰을 통해 자신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맥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는 것은 맥락에 의해 지배당하고 휘둘린다는 뜻이 아니라, 경험을 이루는 맥락적 요소들을 이해하게 되면 경험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습관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오로지 내 내면의 생각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험들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은 그 경험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맥락적 요소들에 의해서 비롯된다. 내 생각과 행동은 겉으로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주변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방향이 정해지고, 때로는 변화되기까지 한다. 맥락은 경험을 꾸며주는 뒤의 배경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 즉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여러 상황들과 마주치며, 그 상황들은 원칙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고, 도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마주침 속에서 주변 맥락적 요소들은 조용히 사람들의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 놓으며, 사람들이 무엇을 인지하고, 주변에 벌어진 이벤트를 어떻게 해석하며, 궁극적으로 무엇을 선택할 지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특정 순간의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한 지속적인 상호작용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한 순간의 모습, 마치 스냅사진처럼 포착된 단 한 순간만으로는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그 이전과 이후의 상황들로 이루어진 그 순간을 형성한 맥락적 요소들을 알지 못하면, 그 스냅사진은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고립된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하게 된다. 더 깊은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과 그 맥락들의 흐름이 드러나고 이해되고 해석될 때 비로소 그 순간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의 정체성은 그 순간 자체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둘러싼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려면, 그 경험에 형태를 부여한 맥락 또한 알아야 한다. 경험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나의 내면적 원칙과 그것을 마주하는 환경 사이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존중할 때 비로소 나는 내 경험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