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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25.QU.03. Mark Weiser가 싫어하는 표현

한 시대가 사용하던 언어가 다음 시대에게는 개념적 부담으로 다가와 오히려 사고의 틀을 가두는 짐이 되곤 한다. Mark Weiser 박사는 ‘Ubicomp(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대해 글을 쓸 때, ‘에이전트’, ‘비서’, 또는 ‘집사’ 등과 같은 표현을 철저히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컴퓨터 디바이스가 인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거나 사용자와 감정적인 교류를 요구하여 사용자의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모든 표현을 경계한 것이다.

Mark Weiser 박사가 컴퓨터에 ‘인격’을 부여하는 아이디어에 반대했던 것은, 기술이 사람을 닮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공적인 존재와 그 인격에 대한 철학적 불편함에서 비롯된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훨씬 더 단순하고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은 이미 충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Mark Weiser 박사가 보기에 사람의 감정과 인지적 능력은 관계, 일, 생각하는 것, 휴식, 그리고 일상 속에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기쁨들을 위해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만 했다. 만약 컴퓨터 디바이스가 인격체인 양 행세하며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 마치 사람들은 그것을 사람을 대할 때처럼 컴퓨터 디바이스에게도 온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Mark Weiser 박사는 그의 글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관심과 주의력이란 결코 가벼이 낭비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Mark Weiser 박사는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감에 대해 자주 글을 썼다. 화면, 입력창, 안내 메시지, 대화 상자, 상호작용하도록 만든 에이전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삶을 살아가게 놔 두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컴퓨터 디바이스와 협상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을 글에서 자주 지적했다. 1991년 발표한 「The Computer for the Twenty-First Century(1)에는 컴퓨터 디바이스가 감당해야 할 몫보다 더 많은 것을 사람에게 요구할 때 느껴지는 그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인격’이란 결코 가볍고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중립적인 특징이 아니다. 상대가 사람이든 인공지능을 가진 인공물이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인격’을 경험한다는 것은 일종의 미묘한 ‘감정적 계약’을 맺는 것과 같다.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반응해 달라고, 인정하고 존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즉, 사람들 마음 속의 일정 공간을 차지하며 인격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 해석을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표정과 의도, 기분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Mark Weiser 박사는 설령 컴퓨터 디바이스에 부여된 인격이 아주 부드럽다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그 존재를 일종의 ‘정신적 부담’처럼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해석을 요구하는 그 존재감이 결국 마음의 짐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세운 Ubicomp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Mark Weiser 박사가 믿은 기술의 본질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이어야 하며, 인지적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여주는 것이어야 하고, 기술에 맞춰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원래대로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었다.

Mark Weiser 박사는 인격을 가진 컴퓨터 디바이스가 갑자기 등장한 인물처럼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컴퓨팅은 그저 전등 스위치처럼, 소리 없이 존재하며 제 할 일만 묵묵히 수행하는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소위 ‘정신적 여유분’에 대해 Mark Weiser 박사가 반대하는 것이다. 정신적 여유분이란 간단하게 말해, 사람들이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인지하고, 반응하고, 공감하거나, 그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는 데 할애하는 사람들 내면의 감정적 수용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친구와 대화하고, 동료의 말을 경청하고, 아이를 돌볼 때 사람들은 기꺼이 이 정신적 여유분을 소모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사람들 삶에 깊은 의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여유분은 무한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Mark Weiser 박사가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컴퓨터 디바이스가 사람의 그 한정된 정신적 여유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컴퓨터 디바이스가 어떤 악의를 가지고 그런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용자의 감정 소모를 유도하도록 설계된 방식 그 자체가,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마음을 써야만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일 컴퓨터 디바이스가 실망감을 표현하면 사람들은 묘하게 컴퓨터 디바이스를 달래거나 위로해서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의 압박을 느낀다. 시스템이 환호하거나 칭찬을 건네면, 사람들은 그에 화답하거나 더 잘해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혀 강박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반려 로봇이 슬픈 기색을 보인다면, 사용자는 무의식 중에 그 슬픔을 자신의 작은 ‘감정적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설령 쾌활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도록 설계된 컴퓨터 디바이스라 할지라도, 결국 어떤 공간의 감정적 분위기를 주도하며 사용자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감정적 리듬 속으로 끌어들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생겨난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는 컴퓨터 디바이스와도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수고로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Mark Weiser 박사가 지적했던, 사람들을 소진하게 만드는 ‘건강하지 못한 숨은 노동’의 실체이다. 그의 글 곳곳에는 주의력을 갉아먹어 고갈시키고, 사용자의 정신 세계에 닻을 내린 채 깊숙이 자리 잡고, 끊임없이 지시와 반응을 요구하는 기술들에 대한 경고가 가득하다.

Mark Weiser 박사는 사람들의 감정적 에너지가 시간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자원으로 여겼다. 그 소중한 에너지를 컴퓨터 디바이스에 쏟는 행위는, 가장 사람다운 가치를 별 의미 없는 것으로 바꾸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반자’, ‘친구’,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시스템은 기술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에 어긋나는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1994년 강연 「The world is not a desktop(2)에서 Mark Weiser 박사는 컴퓨터는 반드시 ‘배경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배경이 되어야 할 기술이 주인공처럼 전면에 나서는 인격을 가질 수는 없다. 진정으로 Calm Technology라면 사람들의 감정을 요구하는 감정적인 욕구를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들 곁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Ubicomp 시스템이라면, 사용자가 그 의중을 살피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협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MASERINTS가 비록 Mark Weiser 박사가 기피했던 ‘집사’, ‘동반자’, ‘에이전트’라는 표현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다른 기술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표현들은 Mark Weiser 박사가 그토록 우려했던 ‘정신적 부담’을 남기지 않는다. MASERINTS를 구성하는 어떤 시스템도 Mark Weiser 박사가 우려했던 ‘인격체’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MASERINTS가 제공하는 지원과 도움은 컴퓨터 디바이스에게 주어진 ‘인격’이 아닌 주변에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집사 같은’ 기능을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를 위해 언제든지 지원과 도움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며, ‘동반자’와 같은 의미는 PTS에게 보다 오밀조밀하고 섬세한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 PTS만을 위해 모든 시스템의 움직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에이전트’는 PTS를 대체하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PTS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야 하는 단서와 풀어야 하는 실마리를 PTS 대신에 찾아준다는 의미이며 그나마 PTS가 스스로 단서를 찾고 실마리를 풀어 일을 해결했다는 만족감을 가지도록 주변 공간을 그렇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Mark Weiser 박사의 우려는 소위 설계자의 의도에 의해 ‘인격’을 가진 컴퓨터 디바이스가 사람들의 일상의 감정적 전면에 나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MASERINTS의 목표는 Mark Weiser 박사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고도화된 도움을 주면서도, 기술이 철저히 조용히 백그라운드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사용되는 표현만은 같을지언정 Mark Weiser가 Ubicomp이나 Calm Technology에서 추구하던 그 비전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은 결코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을 향해 굽어 지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저 드러남에 있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사람들이 요구와 필요가 충족되거나 주변 환경이 제공하는 그런 모든 마찰을 부드럽게 제거해 준 다음에는 다시 고요함 속으로 사라져야 할 뿐이다.

그 당시 Mark Weiser 박사의 우려는 단순했지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것이었다. 이미 컴퓨터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드러나게 눈에 띄며, 시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이 삶의 배경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대신, 오히려 사람들의 삶 자체를 방해하며 사람들을 일상으로부터 떼어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설령 그것이 사람들에게 친근한 방식일지라도, 컴퓨터를 자꾸 의식하게 하거나 상대하게 만드는 대상으로 암시하는 표현들을 거부했던 것이다. Mark Weiser 박사는 글쓰기가 종이 속으로 녹아 들어 사라지듯, 컴퓨팅 기술 역시 분명 존재하지만, 결코 방해는 되지 않는 상태로 사람들의 주변 환경 속으로 완전히 엮어져 녹아 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1991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에 기고한 「The Computer for the Twenty-First Century(1)나 1994년 강연 「The world is not a desktop(2)를 보면 그는 일관되게 강조했는데, 기술의 진정한 목표는 사람들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람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1) The Computer for the Twenty-First Century, Mark Weiser, Scientific American, pp. 94-10, Sep. 1991, https://www.lri.fr/~mbl/Stanford/CS477/papers/Weiser-SciAm.pdf

(2) The world is not a desktop, Mark Weiser, Interactions; Jan. 1994; pp. 7-8., https://calmtech.com/papers/the-world-is-not-a-desk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