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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25.QU.02. MASERINTS vs Mark Weiser vs Alan Kay

MASERINTS는 MASERINTS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인공인 PTS(Person to be served)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한다. 이것은 Alan Kay의 친밀함과 유사한 부분일 수 있다.

MASERINTS는 상황들로 이루어진 주변 맥락을 활용하여 부드럽게 안내한다. 이것은 Mark Weiser 박사의 ‘Calm Computing’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MASERINTS는 최종적으로 PTS의 결정을 존중한다. 이 부분은 MASERINTS가 PTS를 조종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을 피한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MASERINTS는 완전히 Alan Kay도 아니고 완전히 Mark Weiser도 아니다. 오히려 하이브리드 철학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MASERINTS와 달리 컴퓨터가 사람 대신에 결정에 내리고,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는 그런 의미가 Alan Kay에게는 강했던 것이다.

Alan Kay의 표현에서 “사용자에게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술이 사용자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MASERINTS는 수용한다. 하지만, 모든 결정은 사람이 내리며, MASERINTS는 그 결정을 존중하고, 또 사람들 대체하여 드러나는 경우는 없게 설계될 것이다. 지원과 도움을 주는 부분에 있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지원과 도움을 위한 부분이지 사람들 대체하여 컴퓨터가 드러나는 일은 없게 설계될 것이다.

Mark Weiser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 기술이 백그라운드로 사라져 부담스럽지 않고 압도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MASERINTS는 충분히 설계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MASERINTS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점을 제기할 수 있다. 만약 PTS가 본래의 자아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면 MASERINTS는 어떻게 해야 할까?

MASERINTS가 PTS에게, 예를 들어 MASERINTS에서 제공하는 터미널 시스템인 PTS의 디지털 쌍둥이인 VPTS(Virtual PTS), VCC(Virtual Created Context), VAFF(Virtual Affordance) 등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부드럽게 상기시킨다면, 그것은 조종이 아니라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다. 하지만 MASERINTS가 PTS의 의지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Alan Kay의 친밀함, 즉 기계가 자아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안전장치는 MASERINTS가 단순히 PTS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고하고, 상기시키고, 제안하고, 심지어 대안적인 맥락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PTS에게 굴복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는 MASERINTS가 Mark Weiser 박사가 우려했던 의미의 “친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침범하거나 정체성 변화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MASERINTS는 차분한 파트너로서, 툭툭 건드리지만 통제하지는 않는다.

결국 MASERINTS의 정체성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Alan Kay는 아마도 MASERINTS가 PTS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능력에 감탄할 것이다. 그가 “친밀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Mark Weiser 박사는 아마도 MASERINTS가 백그라운드의 차분함과 최종적인 인간의 권위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컴퓨터가 나의 삶을 압도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Alan Kay는 친밀함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Mark Weiser 박사는 친밀함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MASERINTS는 친밀함을 신중하게 다룬다.

이해에 필수적이지만, 항상 자율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MASERINTS는 Mark Weiser 박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그의 꿈을 실현해낸다. 그것은 절대 지배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PTS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역량을 확장한다. 마치 MASERINTS가 연인이나 군주가 아닌, 거울이자 조력자인 온화한 수호자와 같다.

Alan Kay의 친밀함은 때때로 나를 대신하여 생각해 주는 매우 가까운 친구를 갖는 것과 같다고 했고, Mark Weiser 박사의 ‘Calm Computing’은 전혀 방해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하인을 갖는 것과 같다고 했다. MASERINTS는 나를 잘 알고, 내가 잊었을 때 내 자신을 보여주지만, 결코 운전대를 잡지 않는 현명한 동반자를 갖는 것과 같다.

Mark Weiser 박사에게 컴퓨터를 “친밀한”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을 데이터로 축소하고 기계를 사람의 정체성의 중심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John Tinnell은 기술적 한계와 업계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활력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웹의 탄생과 사용자와 콘텐츠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정보 기술 세계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MIT 미디어 랩에서는 ‘Thing That Think’와 같은 프로젝트가 Ubicomp의 이면에 있는 아이디어를 반영했지만, 주된 추세는 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사용자가 무엇을 할지 추적하고 예측하는 것이었다. MIT 미디어 랩에서는 1997년 10월에 웨어러블 컴퓨터를 선보였다.

Mark Weiser 박사는 당시 MIT 미디어 랩에서 선보였던 초기 웨어러블 컴퓨터(몸에 거대한 디스플레이와 센서를 주렁주렁 매달았던 형태)를 보고 매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고 한다.

Mark Weiser 박사가 MIT 미디어 랩에서 개발한 초기 웨어러블 컴퓨터들을 보았을 때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온몸에 장치와 센서를 휘감은 그 기괴한 모습에서 기술적인 창의성은 인정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설계자의 마인드’에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당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은 설계자가 사용자의 ‘친밀한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지 완벽히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하지만 Mark Weiser 박사는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결코 설계자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삶은 훨씬 무질서하고 복잡하며, 도구와 사람의 관계는 지극히 섬세하고 가변적이다. 그래서 Mark Weiser 박사는 기술 앞에 ‘겸손’할 것을 주문하며 이렇게 말한 셈이다. “당신의 발명품이 사람들의 삶에 자로 잰 듯 딱 들어맞을 거라 자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사용자 자신도 스스로를 다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그 미지의 영역을 존중하십시오.

그는 웨어러블 컴퓨터나 이른바 ‘친밀한’ 장치들이 선을 넘고 있다고 보았다. 사용자를 돕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삶 자체를 자신들이 설계한 틀에 끼워 맞추려 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가 느낀 불편함의 실체는 바로 이 ‘지나친 개입’에 있었다.

Tinnell은 Mark Weiser 박사를 컴퓨터 연구자이자 “Philosopher of Palo Alto”라는 독특한 길로 이끈 근본적인 신념들을 탐구했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불확실성, 즉 물 밑에 숨어 있는 빙산의 바닥을 알아차리기를 원했다.

Tinnell은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한다. “당신의 발명품이 청사진에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여준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서, Tinnell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Mark Weiser 박사는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지, 심지어 그들 자신조차도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설계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한 거짓된 확신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신을 눈멀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설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유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Mark Weiser 박사는 대신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만든 발명품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개인적인 역할을 할지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Tinnell은 Mark Weiser 박사는 발명가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기술이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정확히 사용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어떻게 반응할지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사실, 사람들 자신도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항상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식과 습관의 상당 부분은 숨겨져 있거나, 자동적이거나, 말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자가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는 것과 같다.

Tinnell은 이를 “전지전능의 환상(Illusion of Omniscience)”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데, 이해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무시하게 만들거나, 더 나쁜 경우, 발명품을 사람들에게 맞추는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발명품에 맞춰 행동하도록 강요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Mark Weiser 박사는 매우 다른 태도, 즉 깊은 겸손을 제안했다. 이는 자신이 아는 것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창작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신중하게 고려하며, 기술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John Tinnell, The Philosopher of Palo Alt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3, p 274)(1)

(1) The Philosopher of Palo Alto: Mark Weiser, Xerox PARC, and the Original Internet of Things 022675720X, 9780226757209, https://ebin.pub/the-philosopher-of-palo-alto-mark-weiser-xerox-parc-and-the-original-internet-of-things-022675720x-97802267572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