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간에 Ubicomp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할 때 작지만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흔히 사람들은 Ubicomp을 단순한 기술적 비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Mark Weiser 박사는 이 개념의 뿌리가 상당 부분 인류학과 심리학에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XEROX PARC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류학자들과 협업하며, 사람들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이 관찰은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활동의 아주 미세한 디테일까지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방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동선과 어떻게 서로 간에 협업하고 정보를 나누는지 그 방식과, 그리고 문화가 사람의 행동 양식에 미치는 그 영향을 주의 깊고 면밀하게 살핀 것이다.
Mark Weiser 박사에 따르면, 이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동안 컴퓨터 설계자들은 실제 사람들의 삶이 가지는 풍부한 가능성과 풍요로운 상황들이 이루어 만들어지는 맥락들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직 컴퓨터 그 자체에만 너무 좁게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인류학자들은 설계자들에게 중요한 진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은 결코 화면이나 키보드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삶은 물리적인 공간, 사회적 관계, 그리고 문화적 관습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펼쳐진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XEROX PARC 사람들이 컴퓨팅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재고하게끔 만들었다. 단순히 화면 속 인터페이스를 멋있게 다듬는 그런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며, 컴퓨터 자체가, 그리고 컴퓨터가 내뿜는 컴퓨팅이 사람들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어우러지도록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Mark Weiser 박사에게 Ubicomp이란, 지난 20년간 연구 과정에서 축적해온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술에 투영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통찰은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Ubicomp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본질적인 토대 중 하나이다.
최초의 물리적 모델인 탭, 패드, 그리고 라이브보드
인터뷰의 화제는 XEROX PARC에서 실제로 구축 중이던 실험 시스템으로 옮겨간다. 흥미로운 점은, Mark Weiser 박사가 Ubicomp이 결코 책상 위에 쌓여가는 이론적인 개념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 환경과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반드시 실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통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에 따라 XEROX PARC는 세 가지 크기의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모델을 만들었다.
첫째는 탭(Tabs)이라고 하여 가장 작은 디바이스로, 손바닥에 쏙 들어와 손에 쥐고 다닐 수 있는 몇 인치 크기의 초소형 컴퓨터이다. Mark Weiser 박사는 사무실 한 곳에 수백 개의 탭이 흩어져 있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다. 마치 전자식 포스트잇처럼 간단한 메모나 작업을 처리하는 도구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둘째는 패드(Pads)라고 하여 종이 한 장이나 공책 정도의 크기로, 오늘날의 태블릿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한 화면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우는 대신, 책상 위에 여러 개의 패드를 펼쳐 놓고 각각 다른 정보를 띄워 보게끔 설계되었다.
셋째는 라이브보드(Liveboards)라고 하여 벽면을 크기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발표나 협업 또는 화상 회의에 사용되었다.
Mark Weiser 박사는 이를 각각 ‘인치 단위, 피트 단위, 야드 단위의 컴퓨터’라고 불렀다. 이러한 크기를 설정한 아이디어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의 일상 생활 환경에는 이미 이러한 크기의 사물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작은 메모지, 종이 문서, 커다란 게시판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모든 작업을 하나의 모니터에 구겨 넣는 대신, 현실적인 물건들처럼 여러 표면으로 이러한 작업을 나타내는 컴퓨팅 기능을 분산시킨 것이다. 이러한 섬세한 변화는 기술이 사람들의 공간적 습관에 맞춰야 한다는 Mark Weiser 박사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스마트 뱃지: 작은 디테일이 하나가 지닌 엄청난 의미
인터뷰 중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Sandberg가 Mark Weiser 박사의 가슴에 달린 디바이스를 발견했을 때이다. 바로 ‘액티브 ID 뱃지’라는 것이었다. 이 뱃지 안에는 적외선 송신기가 내장된 작은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천장에 설치된 안테나가 이 신호를 감지해 건물 내에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사소한 기술적 세부사항 같지만, 이는 Ubicomp의 핵심 원리인 상황들로 이루어진 맥락에 대한 자각(Context Awareness)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스템이 사용자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많은 것이 자동으로 대응될 수 있다. 전화가 사용자가 있는 방으로 자동 연결되고, 전자 메시지는 가장 가까운 화면에 표시되며, 허가된 사용자가 다가오면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 심지어 한 개인에 대해 하루 동안의 이동 경로와 회의와 관련된 기록을 자동으로 일기처럼 남길 수도 있다.
물론 Mark Weiser 박사는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즉각 인정했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시스템은 자칫 ‘빅 브라더’의 감시 도구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대신 Mark Weiser 박사는 사회적 규범과 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을 통해 개인정보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를 사용자가 스스로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를 조기에 인지하는 것은 이 인터뷰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매끄럽고 원활한 연결과 기술
대화가 이어지며 Mark Weiser 박사는 이 수많은 디바이스들이 어떻게 하나로 맞물려 함께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핵심은 개별 디바이스의 성능이 아니라, 수많은 컴퓨터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되는 방식에 있다. 각 디바이스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다른 디바이스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정보가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패드’에 의견을 적으면,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건너편 ‘라이브보드’에 즉시 나타날 수 있다. 혹은 커다란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작은 ‘탭’에 저장했다가, 다른 방으로 이동해 그곳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바로 띄울 수도 있다.
Mark Weiser 박사의 목표는 사용자가 “지금 내가 어떤 디바이스를 쓰고 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원활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Mark Weiser 박사는 이를 사람들이 방 안에서 글로 쓰인 정보를 접하는 방식에 비유했다. 즉, 책, 노트, 서류는 형식이나 호환이 되는지 따질 필요 없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즉시 읽고 쓸 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컴퓨팅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눈앞에 놓인 기술적 난제들
Mark Weiser 박사는 낙관적인 미래를 그렸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Ubicomp을 가로막는 몇 가지 거대한 기술적 장벽을 장애물로 꼽았다.
첫째, 무선 네트워크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사람이 컴퓨터 한 대를 쓰는 수준을 넘어, 건물 하나에 수백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분산 시스템(Distributed Systems)의 안정성이다. 특정 디바이스 하나에 오류가 생겼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드웨어의 소형화와 저렴한 생산 단가이다. 수백 대의 컴퓨터를 일상 공간 곳곳에 배치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작아져야 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 과제들은 Ubicomp이 단순히 말뿐인 철학적 비전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네트워크, 운영체제(OS), 그리고 하드웨어 설계 전반에서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원대한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