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Mark Weiser 박사의 1994년도 글인 “The world is not a desktop(1)”이란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Mark Weiser 박사는 퍼스널 컴퓨팅의 “데스크탑 메타포”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컴퓨팅은 그러한 모델을 넘어 일상적인 사물과 환경에 더욱 폭넓게 참여하고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글이다.

Ubicomp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알아차리게 되었거나,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작은 비구름처럼 조금 다른 ‘미래의 디지털 세상’ 느낌이 나는 무엇인가 조짐이 조금 보인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 ‘와야만 하는 미래의 디지털 세상’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와야 한다!”는 당위성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MASERINTS에 대한 개념설계를 시작한 것도 어차피 올 세상이라는 의미보다는 와야 할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다른 모습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고 그리고 편안하고 존재감 있게 살기를 원하며, 다시 본래 자신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을 거꾸로 모시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이 도구를 만들 때는 자신들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가 크게 들어 가 있었다. 컴퓨터를 만든 이유도 그렇지 않았을까? 계산도 더 빠르고, 틀리지도 않고, 더 많이 기억하고, 복잡한 연산 작업도 쉽게 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쉽게 정리하도록 그런 일들을 시키기 위해 발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자신들이 손에 익어서 잘하는 것조차 컴퓨터에 맡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입력하는 방법만 조금 개선을 하면, 빠르고 손 쉽게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터페이스의 발전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컴퓨터 사용이 늘어나게 되고, 점점 더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그 컴퓨터나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는 디바이스가 사람들이 꾸려가는 일상 생활에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대체해 가는 꼴이 되면서 그 의존도가 거꾸로 사람들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단계가 되면 그 컴퓨터나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는 디바이스가 없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모시고 사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도움이 되어야 할 도구들이 없으면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는 한시라도 그 도구들과 떨어지게 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유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컴퓨터는 더 사용을 하고 싶지만, 자신들의 삶은 사람답게, 본래 하고 싶은 일들을 방해받지 않고 사는 조금은 단순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사람 간의 인터페이스에 변화를 주어 인터페이스 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 자체가 의식되지 않으면서도 이루어지도록 설계가 되면 된다. 그리고 본래 컴퓨터가 만들어진 원래의 의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무조건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엮어져 살아가면서 결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드러나지 않도록 설계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본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그냥 살아가면서, 뚝뚝 끊어지는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부드럽고 매끄럽게 삶의 흐름을 이어가는 프레임 속에 무수히 많은 컴퓨팅이 사람들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도록 설계하면 된다.
그래서 MASERINTS의 세상은 Ubicomp처럼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연적인 길이다. 그러한 갈망을 충족하기 위해, MASERINTS는 다시 한번 잃어버린 차분함을 되찾고 잊혀 진 삶의 여유로운 리듬을 되찾기 위해 설계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술과 씨름하며 삶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술들을 만들겠다고 장담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문제지만, 사실은 사람들은 지금이 바로 그들이 만든 속이 검은 디지털 공간에서, 그리고 사람들을 기술적인 산출물로 유혹하여 그 산출물의 노예로 만들려는 그들의 계략에서 벗어나야 할 때인 것이다.
과연 Ubicomp이 만들어갈 진정한 미래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Mark Weiser 박사의 강한 생각대로 Ubicomp, 그리고 Calm Technology의 개념적 이해가 들어간 시스템이 탄생할까? 적어도 MASERINTS는 그런 개념을 완전히 받아들인 새로운 디지털 공간으로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미래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않은 그런 세상을 사람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언어와 개념으로 묘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고 싶은 ‘미래’라는 곳으로 연결해 줄 다리 역할로 과연 어떤 메타포를 사용해야 할까?
‘데스크탑’의 의미를 그대로 심은 컴퓨터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면, 그래서 ‘데스크탑’이라는 메타포를 제공해 주었다면, MASERINTS를 통해 주변 디지털 공간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만들어 미래의 디지털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미래의 세상에 대한 컴퓨팅의 메타포로 MASERINTS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즉, MASERINTS를 이해하게 되면, 미래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MASERINTS의 관점에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사람을 지키는 로봇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로봇이 너무 작아서 사람들의 눈에 자꾸 뜨인다는 것이다.
MASERINTS의 관점에서 영화 “트루먼 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살던 공간이 작아도 너무 작아서 그 끝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MASERINTS의 세상은 가도가도 다다를 수 없는 공간이며, 또한 그 공간이 들어갈 만한 내부 공간을 가진 로봇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MASERINTS에서는 이를 Robotization(개인화된 디지털 공간)이라고 부르면서 거대한 공간의 주변을 구성하는 컴퓨터 체계와 그 공간 안을 구성하는 초소형 컴퓨터 디바이스로 인해 개인화된 디지털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 안에 사람들은 지원과 도움을 받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모든 공간을 구성하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많은 컴퓨터 디바이스가 이 공간을 구성하게 될 것이며, 그 공간 주변 곳곳에 크기가 다양한 컴퓨터 디바이스와 체계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세상이며, 사람들은 이것을 MASERINTS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미래 디지털 공간에 대한 메타포는 사람의 삶과 생활의 흐름 그 자체라고 했는데, 복잡한 기술 용어 대신 지금의 나의 이해를 돕는 그러한 익숙한 단어나 표현으로 이 낯선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까? 1980년대 ‘데스크탑’이 퍼스널 컴퓨터, 퍼스널 컴퓨팅 시대의 강력한 메타포가 된 것처럼, Ubicomp 시대를 위한 적절한 메타포를 찾을 수 있을까?
쉬운 질문은 결코 아니다. 사실, 꽤 어려운 문제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MASERINTS의 본질과 비전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다가올 미래 세상에 대한 이해의 메타포는 MASERINTS가 될 것이며, MASERINTS를 이해하면 마치 안개가 걷히면서 사람들이 그토록 상상해 오던 ‘미래의 디지털 세상’이라는 풍경이 드러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언급된 각주의 내용
(1) The World Is Not a Desktop, Mark Weiser, Jan 1994, https://calmtech.com/papers/the-world-is-not-a-desktop, https://www.dgsiegel.net/files/refs/Weiser%20-%20The%20World%20is%20not%20a%20Desktop.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