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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004.09. 기술에 대해 눈을 떠야 하는 이유

과연 사람들이 그 기술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는 바로 중심 방향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그 삶의 방식은 물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형성할 아주 중요한 갈림길에 사람들은 서 있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의 삶이 결정되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갈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로 이끌 것이다.

이 갈림길은 미래를 형성하는 선택의 순간과 같다. 이렇게 기술이 사람들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과 같은 표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사람들의 생각이 집중되는 것,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심지어 사람들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형성되는 깊은 곳이다.

그리고 기술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전기나, 라디오,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발명품을 소화할 시간이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기술들이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데 수십 년이나 걸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예를 들어, 사람들을 대신하여 정보를 찾아주고 완성해 주는 인공지능이 있고,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하는 앱도 있고, VR, AR, MR과 같은 디지털 경험은 매우 생생하고 매력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거나, 혹은 실제로 어떤 장소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를 VR이 대체하거나, 심지어 그에 버금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즉, 친구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VR의 세상에서 시간 보내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VR이 사람들의 삶에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현실적이 되어 물리적인 세상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데, 그것들이 사람들의 주변에서 모두 동시 다발적으로 사람들이 정신차리지 못하도록 한꺼번에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기술들이 사람들의 삶이 영역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의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보다 더 큰 힘과 맞서고 있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의 변화를 맞이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 심지어 사람들이 어떻게 꿈꾸는 지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가고 있다. 당연히 그런 종류의 급속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정말 나는 이것들과 함께 어디로 가고 있다는 말인가?”, 결국 사람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가 향하는 길의 중심 방향을 삶에 쓰이는 도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흘러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아닐까?

정작 사람들이 질문해야 하는 것은 도구가 이렇게 강력하고, 이렇게 빠르며, 사람들의 삶 자체의 구조에 이렇게 깊이 자리잡게 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것이다. 도구는 더 이상 책상이나 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는 사람들의 귀에, 사람들의 집에, 사람들의 생각 속에, 심지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까지 있다.

디지털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것과 합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주변에 공간을 형성하고, 그리고 놀라운 기회와 심각한 위험을 동시에 모두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두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기술에 끌려가지 않을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방향으로 지혜롭고 자각적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더욱 더 나은 관계가 구축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하게 되고, 서로를 더 수월하게 돌볼 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으며,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 안의 최고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의 두뇌가 굳어 있고, 깨어 있지 않으면, 생각 없이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도록 놔 두어 이러한 도구들이 사람들을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을 빼앗거나, 심지어 진정한 인간, 즉 차분하고 사려 깊고 현재에 충실한 존재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리게 만들며, 조금씩 사람들에게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앗아갈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위험을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고 싶다면, 스마트폰, 컴퓨터, 스마트 TV 같은 디바이스들을 매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디지털 디바이스들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 상태를 유지하고, 정보를 찾고,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하지 않으면 이유도 모른 채 스크롤하거나 탭 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디바이스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때는 사람들이 디바이스들에게 점령당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런 순간은 길 안내나 알림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사람들을 대신해서 생각하는 것까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디바이스에 의존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거나, 갑자기 오프라인이라도 된다면 불안해지는 마음이 커지고, 배터리가 2% 남았을 때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었던, 기술에 매우 의존적이었던 자신이 기억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들이 사람들 각자의 생활과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으면, 쉽게 집중력을 잃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작성하거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린다면, 삶의 흐름에 그것이 제일 우선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할 것 같고, 사람들 자신이 원래 하려던 생각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이런 끊임없는 방해는 깊이 생각하거나, 제대로 일하거나, 심지어 쉬는 것조차 방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이 주변에 너무 가깝게 있다 보면, 주변에서 사람들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즉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 공감, 침묵, 진정한 소통 같은 것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된다. 자신들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람들을 기계처럼 대하거나, 사람들 스스로도 기계처럼 하루 종일 클릭만 하고 그에 반응만 한다면, 사람들은 삶을 생동감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것들을 천천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 기술들을 사용할 때, 두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기술은 사람들을 서서히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기술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기술에 의존하여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가 변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자주 고민해 보고, 디지털 도구를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기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다만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두뇌가 활발하게 활동해야 그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인류가 향하는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실제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표현이 될 수 있다. 단순하게 디바이스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나의 인식을 업그레이드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여전히 그러한 이끌림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기술이 너무 빨리 변해서 사람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알아차리게 되었다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심오한 질문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어느 길일까? 그래서 나는 미래에 어떤 삶을 살까?”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그 기술을 가지고 상업적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만 이런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그저 따라가다가 이용당하는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용자’일 뿐이란 것인가?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의견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MASERINTS라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개념적 디자인을 해 가는 바로 그 이유이다. 특히 강력한 기술이나 큰 사회적 변화와 관련된 경우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듣는 것이 아니다. 즉 미래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통제되거나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많은 사람에 의해 함께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아이가 컴퓨터 디바이스와 인공지능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실제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는 “이 기술을 사용해서 내 삶이 더 피곤하게 되고, 나 스스로 공허감을 가지게 하고, 삶에서 더 멀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보다는, 이 기술이 나를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연결된 느낌을 주며, 내가 더 살아 있는 기분을 가져 내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나는 기술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조종하게 놔 두는 것보다, 내가 나의 선택으로 기술을 사용하고 통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는 “이 기술이 나를 그냥 바쁘게 만들어 오히려 사람들과 내가 더 멀어지게 만들게 하는 것보다, 정말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람들이 서로를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문제이고,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내 주변에 어차피 있어야 할 디지털 공간들이라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 자신을 보호해 주고, 나에게 도움을 주고, 또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MASERINTS를 디자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일깨워 주고자 하는 것이다. 기술은 내가 더욱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유용하다고 말이다.

내가 이러한 변화를 환영하든 환영하지 않든, 나는 이 변화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을 내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해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선 나의 생각이 지나간 세상에 뿌리를 두고 그곳에 얽매어 있다면,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패턴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패턴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눈에 띄지 않는 굳어진 습관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은 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기도 한다. 이것이 함정인 것이다. 내가 나의 생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면서, 발견을 제한하게 되는데, 발견이 제한되면 창의성은 고갈된다.

오래 전 한때 계산하는 도구에 불과했던 컴퓨터조차도 이제는 발견하고 창출도 한다. 스스로 학습한다는 시스템은 데이터의 패턴을 파악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며, 심지어 예술, 음악, 디자인과 같이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처리 능력, 즉 컴퓨터나 인공지능 시스템의 강점이 얼마나 빨리 계산하고,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을 정말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그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첫째, 그들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둘째, 그들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한다. 셋째, 그들은 패턴을 검색하고 가능한 여러 가지 많은 솔루션을 빠르게 시도할 수 있다. 따라서 강점은 단순히 속도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탐색하고 활용하는 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이미 본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검색하는 구조화된 방식과 그것을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방식인 것이다. 그래도 가장 큰 강점은 절대 작은 것이라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 컴퓨터의 방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기계처럼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내가 습관처럼 생각하고 배워온 방식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차갑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비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컴퓨터가 매우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보를 정리하고, 자료와 정보를 탐색하고, 그로부터 학습도 하고, 패턴을 찾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간과할 수 있는 것까지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합에 대해 가능성을 가지고 시도하는 것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습관을 배운다면 어떨까? 체계적으로 가능성을 파헤치고, 세부 사항을 기억하고, 과거 경험을 연결하는 습관을 배운다면, 내 자신이 실제로 더 개방적이고, 더 사려 깊고, 더 완전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로봇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호기심을 가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방법을 시도해 본다면 어떨까? 마치 어린 시절에 했던 것처럼, 또는 지금의 스마트한 컴퓨터가 하는 것처럼, 어떤 기억 속에 있는 세계로 탐험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진정한 감정과 인간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