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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만의 디지털 공간을 향해

1. 디지털 공간들 속에 경험하는 내 삶의 단절

2. 나에게는 다른 형태의 디지털 공간이 필요하다

3. 나의 동반자가 될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

4. 미래의 디지털 공간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5. 언급된 각주의 내용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디지털 공간들에 빽빽하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동영상 앱을 보거나, WiFi를 이용해 일정을 확인하는 등의 일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바로 이 조금의 틈도 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디지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 디지털 공간들은 매우 다양하기까지 하다. 무심코 앱을 열거나, 동영상을 스트리밍할 때마다, 사실은 조금씩 다른 디지털 공간에 발을 들여 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비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사람들이 어떤 앱을 사용한다면, 그 앱과 그 사람은 그 순간에 하나의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영상 앱을 볼 때면, 사람들은 동영상 앱의 디지털 공간 안에 있는 셈이고, 영화 앱으로 전환하면 영화 앱의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 순간에는 하나의 디지털 공간에서 다른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전환이 필요해도 사실 우리는 꿈쩍하지 않아도 전환은 일어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기만 하면, 아니면 눈짓만 주기만해도 전환을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 전환의 순간에 정신적인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가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물리적인 단절도 경험하지만, 사람들의 삶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정신적인 단절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절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디지털 공간으로의 전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YouTube나 Netflix 시청은 그 자체가 죄악도 아니고, 부도덕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해로운 것도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Mental Jump’라는 것이다. ‘Mental Jump’란 단순히 한 Context에서 다른 Context로 넘어갈 때 마음이 경험하는 작은 끊어짐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서 조용한 YouTube 강의를 보다가 갑자기 시끄러운 Netflix 영화로 넘어간다든가, 성경 구절을 읽다가 갑자기 Instagram으로 넘어간다든가, 공부하다가 갑자기 게임을 하다가 다시 공부로 넘어간다면 ‘Mental Jump’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같은 “정신적 분위기”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의 작은 세상에서 다른 작은 세상으로 ‘Jump’한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항상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문제는 “Mental Jump”가 일어날 때 두뇌가 그 순간에 받는 고통 때문이다. 작더라도 이러한 잦은 “Mental Jump”는 기억력의 저하와, 또 회상할 수 있는 능력의 저하로 나타난다고 한다(9). 또한 반응 속도에도 영향을 주면 오류가 증가하게 되어 소위 “Switch Cost”가 발생하게 된다는 한다(13). 또한 ‘Context-switching’이 일어날 때 ‘Cognitive Load’를 상당히 증가시키고, 작업 성과의 저하를 겪게 된다고 한다(14). 이러한 연구는 “Mental Jump”가 두뇌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인데, 물론 모든 ‘Context-switching’이 심각한 불편함이나 지속적인 피해를 초래한다는 것은 아니라 그 영향은 빈도수, 복잡성, 그리고 정신적 집중요구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그런 “Mental Jump”가 자주 발생할 때 아마도 두뇌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어떤 상태에 있는 거지?” ‘Mental Jump’가 1초 밖에 걸리지 않더라도 두뇌는 여전히 약간의 ‘Reset’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Mental Jump’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Mental Jump’가 너무 자주 발생하거나 갑작스럽다고 여겨질 때만 불편함을 느끼는데, 차분했던 기분이 갑자기 과부화가 걸리거나 자극을 받는 경우에 기분이 갑자기 흐트러지면서 감정적 불일치가 일어날 수도 있고,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려 생각이 흐름이 끊어지는 인지적인 방해가 일어날 수 있으며, 잠시 동안이라도 방금 전과 동일한 삶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치 순간적으로 다른 분위기로 들어간 것 같아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불편함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냥 기분이나, 생각이나 내면의 어떤 연속되는 것이 갑자기 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편함은 기분을 나쁘게 만들 수 있는데, 평소에는 차분했는데, 새롭게 동영상을 추천을 받았는데, 그 동영상이 기분을 망쳐 새로운 디지털 공간에서 다른 감정이 막 밀려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앱 안의 다이내믹 알고리즘이 나를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가 원하는 시간의 흐름을 잃게 만들 때가 있다. 또 너무 자주 전환하다 보니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아무런 이유 없이 정신적으로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전환한 것이라면 그래서 편안하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다. YouTube나 Netflix와 같은 앱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앱들은 서로 다른 디지털 공간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두뇌는 “Mental Jump”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MASERINTS도 또 다른 디지털 공간이라고 하는데, 왜 이런 부분이 이야기가 되어야 할까? 그것은 MASERINTS는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앱이나 또 다른 하나의 디지털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MASERINTS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선 MASERINTS는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사람들의 실제 삶과 엮어져 그 삶의 흐름 속에 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MASERINTS가 제공하는 디지털 공간은 갑자기 사람의 감정을 현재 그 사람의 삶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말로 해서 감정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사람의 삶이 평온하면 디지털 공간도 평온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만일 사람이 어떤 일에 집중을 한다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사람이 슬퍼한다면, MASERINTS는 그 사람과 관련 없는 일로 흥분을 시켜 감정이 폭발하지 않게 할 것이고, 분위기가 차분해지면,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이다. 즉, 감정 상태와 디지털 공간이 충돌하지 않고 일치하게 유지된다는 뜻으로 MASERINTS는 이러한 것을 목표로 하지만, 일반 앱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감정의 흐름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앱들은 사람을 앱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MASERINTS는 사람들의 세상에 오히려 머물러 있을 것이다. MASERINTS에 사람들이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MASERINTS는 사람들의 삶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삶에서 앱으로, 또 다른 앱으로 또 다른 앱으로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Context Switch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언급한대로 인지과학의 측면에서 ‘Context Switch’는 값비싼 대가를 치룬다고 알려져 있다(9)(10)(11).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정체성의 연속성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자신의 삶의 흐름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잠시 짧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전환은 그 디지털 공간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디지털 공간을 경험할 때 사람들의 실제 삶과 연속적이지 않고, 그 앱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MASERINTS는 그런 종류의 ‘Mental Jump’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다.

이런 이슈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디지털 공간이 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YouTube, Netflix, TikTok, Instagram 등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디지털 공간들은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디지털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공간들의 디자인 목표가 ‘나’라는 한사람 개인의 이력, 슬픔, 믿음, 성격 또는 장기적인 웰빙을 위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객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많이 유도하고 싶어하고, 수익 창출을 극대화 하고 싶어하고, 광고 주기를 자주 가지기를 원하고, 자신의 알고리즘이 클릭수와 조회수, 참여유도에 괜찮은 알고리즘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위해 형성되고 사람들을 결정된 카테고리 안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이러한 플랫폼들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과 주변에서 동떨어진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MASERINTS와 같은 디지털 공간이 필요한 것은 그 흔한 편리함 때문도 아니고 상업적 효율성 때문도 아니고,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스마트 홈 엔터테인먼트” 때문도 아니다. MASERINTS는 사람들의 삶이 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또 앱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의 삶은 오래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 하루하루 만들어가고 경험하며 연결되는 기억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어떤 삶 속의 상황과 맥락, 천천히 변화하는 꿈, 일상적인 것, 두려울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는 순간들, 서로 이타적인 마음으로 지원과 도움을 제공해 줘야 하는 관계의 형성, 무엇인가가 필요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 이 외에도 많지만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앱들은 사람들의 슬픔을 감지할 수 없고, 또 슬픔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 앱들이 ‘디지털 중독’이나 다른 나쁜 중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해로운 생각을 피하도록 돕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을 곁에 있으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런 지원도 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능하다. 같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MASERINTS는 동반자처럼 MASERINTS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디지털 공간인 것이다. 다른 디지털 앱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만들지만, MASERINTS는 사람들과 같은 세계를 만들게 되고, 그 연속성 안에 있게 만든다.

물론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반 앱이 주는 서비스(동영상, 영화 등)를 즐겨도 괜찮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일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기쁨일 수도 있다. 그래서 MASERINTS를 베이스캠프로 하는 이 스토리텔링의 목표는 사람들이 앱을 그만두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이 “도구로 사용하는 대상이 있는 디지털 공간”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디지털 공간” 사이에는 엄연히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MASERINTS는 일반 앱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MASERINTS는 일상과 디지털 생활 사이의 단절된 경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세계가 얼마나 분열되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MASERINTS는 그들의 즐거움을 대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의 통합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Mark Weiser도 사람들에게 컴퓨터 사용을 중단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Mark Weiser는 더 깊은 의미를 전달했다. “컴퓨팅은 차분하고, 배경으로 물러나, 사람의 주의력을 끌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Mark Weiser는 사람들이 디지털 도구를 버리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Mark Weiser는 컴퓨터가 지나치게 중심이 되고, 인터페이스가 지나치게 까다로워지고, 사람들은 삶의 자연스러운 연속성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Mark Weiser는 “디지털 공간이 사람들을 계속해서 사람들 자신의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면, 컴퓨터는 인간에게 지원하고 도와주는 대신 인간을 변화시킬 것(12)”이라는 위험을 느꼈고 그래서 Ubiquitous Computing을 제안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MASERINTS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 주변에 흔한 일반적인 앱을 비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연속적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는 모두 단편화 되어 있다. 그래서 MASERINTS는 삶의 흐름의 연속성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하는 디지털 공간이 되어 그 흐름에 엮어져 매끄럽게 동행하는 디지털 공간이 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변에 흔한 일반적인 앱 사용을 멈출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앱이 주의력, 정체성, 그리고 흐름을 빼앗지 않도록 단지 내면 세계를 연결해 주는 디지털 기반 층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변의 앱들을 이용하면서 디지털 공간들을 이용하는 그 모양새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치 서비스를 얻기 위해 주변에 떠다니는 작은 섬들 사이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어떤 하나의 섬에 있어 좋을 수도, 또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섬은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즉, 각각의 앱 자체로는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 공간들이 사람들과 엮여 있는 모양새는 매끄럽게 통합된 모양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디지털 공간의 분리되는 성격을 ‘단편화(Fragmentation)’라고 한다. 하나의 서비스를 얻기 위해 디지털 공간으로 들어갈 때, 혹은 하나의 디지털 공간에서 또 다른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될 때, 이 전환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들의 본래 살아가는 삶의 흐름에서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 단절을 경험하는 이유로는 전환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의력(Attention), 즉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삶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을 지탱하기 위해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이 있는데, 이 순간을 ‘전환’을 위해 모두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디지털 공간은 내가 그 공간에 있는 일정한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어떤 디지털 공간도 ‘나’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이나 역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 동안 나를 점유하게 된 디지털 공간은 자신이 의도된 흐름 위에 내가 편승하도록, 내가 그 섬을 떠나지 못하도록 나의 아주 조그만 어떤 움직임이라도 분석하여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려고 한다. 나를 자신의 의도에 더 맞도록 만들기 위해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의도된 흐름에 나를 올려 놓으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세탁 앱’은 내 빨래가 언제 끝났는지 알 수 있고, 나의 “일정 앱”은 오후 3시에 내가 한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내 “약 복용 앱”은 내가 이미 약 복용시간을 놓쳤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내 “소셜 앱”은 친구가 나의 게시물에 반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기술적인 서비스는 각자 나름의 좁은 범위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어떤 앱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등에 대한 하나의 지속적인 이해로 그 단편화 된 조각들을 하나로 묶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그 디지털 공간들이 나의 관심을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 속에 휘말린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삶은 어떤 ‘일’들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좋아해서 하고 싶은 일이든, 완수해야 하는 업무에 관련된 일이든지 간에 그런 일들을 연속적으로 해 가면서 일상생활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인생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일관성 있게 잘 흘러가던 내 삶의 흐름이 잠시 끊어지는 순간, 즉 서비스를 얻기 위한 디지털 공간과의 인터랙션은 내 삶의 흐름에 단절을 경험하게 하고, 그 단절된 삶의 흐름의 양 끝을 다시 매끄럽고 부드럽게 잇고 원래의 삶의 흐름으로 돌아오는 것은 모두 나의 수고와 책임이 된다.

수십 개의 버튼을 눌러, 수십 개의 디바이스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디바이스들이 제공하는 디지털 공간이 나의 삶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들의 목적에 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휴대폰으로 온도 조절기를 설정할 수 있고, 세탁을 시작할 수 있고, 주차 요금을 결제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내 삶의 흐름의 단절에서 오는 많은 거추장스러움과 해야 하는 일이 있음에도 주변에 집중력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제거는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나는 나에 의해서 통제를 받는, 나 만을 위해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는 그런 디지털 공간을 원하고 있다. 물론 누구나 이런 디지털 공간을 원할 것이다. 지금처럼 내 주변에 있는 디지털 공간과의 인터랙션으로 인해 잘 흘러가던 일상생활의 단절이 싫어 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음성이나 손짓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인한 작고 순간적인 일상생활의 단절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나의 명령과 조작에 의해 그런 디바이스와 기계들이 움직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서비스라는 의미의 개념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의 기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은 내가 집중력을 가지고 수행하던 일에서 빠져나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에게 서비스를 얻기 위해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빼앗긴다는 것(1)이다. 여기 내가 집중하고 있는 주의력이란 나의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이 어느 것을 향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내가 완수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그런 일들의 진행을 도와주어야 할 도구를 향해 있는지, 어느 것을 향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 즉 주의력을 자주 빼앗긴다는 것은 그 만큼 내 삶의 단절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 단절이 주는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인 에너지 소비는 모두 내가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앱을 이용하는 것도 나의 일상의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휴대폰의 앱을 열어 검색하기도 하고, 정보를 획득하기도 한다. 그런 단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세상, 지금보다 더 빽빽한 디지털 공간들로 꽉 차게 될 세상에서 사람들의 복잡한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그런 작은 단절들이 모여서 일상 생활의 흐름을 자주 끊어 버리는, 그래서 정신적으로 겪어야 할 “Switch Cost”도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 겪어야 할 시간과 여유의 손실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벽에 못 하나 박고 그 위에 시계를 걸으려고 하는데, 그 적당한 못 하나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알맞은 망치를 찾느라 정작해야 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버리고, 그 순간은 망치와 못을 찾는데 모든 생각이 집중되고, 그것이 스트레스로 변하고, 점점 압박감으로 변하게 되어, 결국 더 많은 시간을 서비스를 받으러 가기 위해 허비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소개될 디지털 공간은 점점 그런 개념을 지양해야 한다(1).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서비스라는 것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의 기능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받아야 할 주인공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Mark Weiser 박사가 ‘Ubiquitous Computing’에서 주장하고 있는 미래의 디지털 환경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미래의 살아 있는 디지털 공간에서는 오히려 서비스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고, 서비스를 받을 주인공에 대한 지원과 도움이라고 표현되어야 한다.

미래에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세탁을 하게 될지, 또 TV를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디지털 공간만큼은 소위 서비스로 인해서 일상생활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를 어느 정도 알아서 해 줄 수 있는 집사 같은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의 “집사와 같은 디지털 공간”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Mark Weiser 박사가 제안했던 ‘Ubiquitous Computing’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집사’는 자신이 화려해지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고, 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나를 위해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그리고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매끄럽게 도움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Mark Weiser 박사가 제안했듯이 컴퓨터가 사람들의 주변 공간에 녹아 들어 조용히 사람들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며, 사람들을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개념이다(2).

아래 그림은 미래의 서비스는 점점 서비스 받을 주인공의 요구와 필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서비스는 지원과 도움으로 변하고, 미래로 갈수록 User의 범위는 줄어들고, PTS(Person to be served)의 범위는 늘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PTS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주인공이라는 표현이다. 이 PTS를 굳이 사용하게 된 것은 서비스 받을 주인공인 PTS는 결국 디지털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나타내며, 나는 미래에 ‘User’의 입장보다는 PTS의 입장이 될 상황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User의 입장에서 받는 서비스는 디지털 공간으로부터 받는 서비스가 나의 의식을 사로잡고,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에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빼앗아 버린다. 그런데, PTS의 입장이 되면 그 소위 ‘서비스’라는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 ‘서비스’라는 것이 나에 대한 지원과 도움으로 변하고 정작 그 ‘서비스’라는 것을 받을 주인공인 PTS는 그런 지원과 도움이 있었는지조차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PTS의 주의력(Attention)을 빼앗지 않고도 PTS의 입장에서 받는 지원과 도움은 디지털 공간으로부터 제공되기 때문이다. User의 입장에서는 받아야 할 서비스가 나의 주의력을 일정 시간 동안 빼앗게 되고, 그로 인해 단절이 발생하지만, PTS는 자신이 받는 지원과 도움의 순간에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제공되어도 ‘서비스’라는 것을 받을 주인공인 ‘나’, PTS는 그 지원과 도움으로부터 오는 단절을 경험하지 않고도 그저 여느 때처럼 그냥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User의 입장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단절도 경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새로운 의미를 User라는 표현 하나에 담기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PTS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상태를 구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집사 같은 디지털 공간을 자주 상상한다. 오히려 나는 그 집사가 나를 위해 무엇을 지원하고, 어떤 도움을 얼마만큼 주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일상생활의 흐름을 단절시키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지원과 도움이 나의 일상생활에 잘 엮어져 녹아 들어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 미래의 나 만을 위한 디지털 공간을 집사 같은 ‘Intelligent Agent(3)’라고 하지 말고 집사 같은 ‘동반자’라고 부르면 어떨까? 즉, 매일 나와 같이 살게 되는 디지털 공간이 나를 위해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그런 순간에 나의 요구와 필요를 위해 무엇인가 준비하고 실행하는 그런 집사 같은 동반자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즉, 일방적으로 나 만을 위해 존재하는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항상 살펴보고 있다가, 나의 습관들과 내가 남긴 여러 형태의 삶의 흔적들, 심지어 나의 내면적인 상태까지 이해하며, 나의 본질적인 마음까지 알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나를 지원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이며 친구 같은 디지털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미래에는 왜 이런 ‘동반자’와 같은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이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 그것이 실용적이고 인간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 번 고민해 볼만하지 않을까?

매일 내 휴대폰은 여러 개의 디지털 공간으로 이루어진 세상, 즉 앱으로, Feed로, 많은 서비스가 펼쳐져 제공된다. 각각의 앱은 편리함도 주고, 재미도 주고, 또는 즐거움도 주고, 그리고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디지털 공간들이 나에게 여러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네비게이션은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려주기도 하고, 캘린더는 나의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틈틈이 남는 시간을 재미로 메워 주기까지 한다.

이런 삶의 흐름이 겉보기에는 더 좋아진 것처럼,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디지털 공간들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그 만큼 새로운 부담을 더 안겨주게 된다. 더 많은 비밀번호를 기억해야 하고, 개인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수십 가지의 알림 규칙을 관리해야 하고, 어떤 메시지가 중요한지 판단해야 하고, 한 서비스에서 다른 서비스로 시선을 옮기기 위해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자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환’은 나의 습관이나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나와 인터랙션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들은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나의 하루의 모든 순간의 상황(Situation)과 전체적인 맥락(Context)를 이해하는 동반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민거리의 시작이었다. 지금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주변의 디지털 공간들 중에는 개별적으로 나와 관계된 일들을 잘 수행하고, 게다가 탁월한 것도 있다. 심지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디지털 공간들은 무엇보다도 ‘나’의 지속적으로 일관된 삶의 흐름에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나의 삶의 흐름에서 자신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자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모든 서비스는 내가 선호하는 선택만을 하도록 나를 유도하고, 모든 알림은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4). 심지어 빼앗긴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다시 모아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삶의 흐름 쪽으로 돌아오는데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꼈겠지만, 나는 나의 본래의 삶의 흐름을 바꿔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그들이 원하는 흐름으로 갈아타게 되는데, 사실 나는 그 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로 삶의 흐름에 거추장스러움과 거슬림이 발생하면 그 때서야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게다가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도구들이 나의 삶의 흐름을 더욱 더 자주 단절시키고, 그렇게 됨으로써 삶 속에 거추장스러움이 발생하고, 심지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삶의 흐름에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를 유도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바뀐 나의 삶의 흐름은 원래대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절된 삶의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고, 원래의 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 되고 말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내 삶의 흐름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삶은 이렇게 내가 원하지 않는 그런 방향으로 나를 유도하는 디지털 공간들로 꽉 찬 세상이 아니다. 일상적인 요구와 필요가 스트레스로 변하기 전에 미리 알고 지원하고 도와줄 수 있는 그림과 같이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나와 함께 동행하며, 모든 것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그런 집사와 같은 동반자 역할을 하면서, 이제 이런 단절이나 다른 의도로 접근하는 디지털 공간들 속에서 내 삶의 흐름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하나의 디지털 공간을 가지고 싶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내가 피곤하고 지칠 때는 나를 품어 주고, 내가 혼란스러울 때는 나의 결정을 지지하며, 실제로 필요할 때까지 조용히 뒤에서 지켜봐 주는 디지털 동반자(1)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이 디지털 공간을 제공해 줄 그런 체계를 MASERINTS(Master Agent Synchronizing Experiences, Realities, Interpreting Neural Traces & Shadows)라고 부르려고 하는 것이고, 이제부터 이 MASERINS에 대한 ‘개념적 디자인(5)(6)(7)(8)’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 만을 보호해주고, 나에게 지원과 도움만을 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디지털 공간을 구성해 보려고 한다.

단순히 기능만 나열하는 세상이 아니라, 또 그 기능으로 시작하는 것을 그저 찾아가 사용하는 서비스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나의 요구와 필요로부터 시작되는 나를 위한 지원과 도움이 되어, 나에게 일상의 삶을 잘 감겨진 실타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공간, 살면서 겪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서와 실마리를 툭툭 던져 압박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Nudging 하기도 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와 관계된 수십가지의 결정과 행동을 나를 위해 관리해 주는 동반자로서 말이다.

그래서 아래 그림에서 보여주듯이 적어도 이러한 정보의 제공만큼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흐름에 커다란 변화를 주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일상생활의 흐름이 끊어지며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일정한 시공간적인 소비를 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고, 두 번째 그림은 흐름에 약간의 과정은 거치지만, 일상생활의 흐름이 거의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 안에서는 두 번째 그림처럼 원래 가져야 하는 삶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집사 같은 동반자라면 나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도 아닐 것이고, 받을 서비스를 위해 나의 일상 생활의 단절을 만드는 그런 존재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단지 나 만을 위해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고, 이런 디지털 공간이 미래의 나의 디지털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이 디지털 공간을 구별하여 MASERINTS라고 부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MASERINTS를 베이스캠프로 하여 과거로 가서 구상하고 있는 디지털 공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보고, 또 구상하고 있는 디지털 공간의 마음과 같은 역할을 할 중요한 개념을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의 디지털 공간의 구조와 사용 가능한 분야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려고 한다.

우리의 하루는 완수해야 하는 일과 또 하고 싶은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일들을 해 가면서 많은 도구를 사용하여 일을 시작하고, 일을 진행시키기도 하고, 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완수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지는 주의력(Attention), 즉, PTS의 두뇌에 생각이 집중되는 순간의 모든 중심은 단절없이 이러한 일들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MASERINTS’라는 집사 같은 동반자 역할을 할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은 그런 PTS의 주의력(Attention)이 이어지고 끊어지지 않게 그리고 방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이 디지털 공간은 PTS의 가장 가까운 곁으로 다가와 지원을 하고 도움을 주게 된다.

이 디지털 공간과 PTS는 삶의 흐름을 같이 만들고 동행하며 PTS도 모르게 수많은 인터랙션을 하면서 PTS만의 디지털 공간으로 점점 변화하게 된다. 만일 성장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PTS와 동일한 ‘Digital Twin’인 VPTS(Virtual PTS)를 만들고 생성하기 위해 MASERINTS는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VPTS를 점점 PTS와 닮아가게 변화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MASERINTS라는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은 잘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고, 나와 같은 그런 ‘Digital Twin’인 VPTS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장한다는 표현은 PTS를 꼭 닮은 살아있는 디지털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MASERINTS가 집사와 같은 동반자가 되어 어떤 순간에 PTS에게 필요한 그런 지원과 도움을, 정확히 필요한 시점에, 정확한 장소에서 정확히 필요한 것 만을 주기 위해 존재하게 된다.

이에 대해 괜한 우려가 생길 수도 있지만, 어차피 앞으로 수많은 다양한 디지털 공간들, 나를 위하는 척하지만,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를 이용하기 위해 나를 서비스의 중심에 얹어 놓는 그런 상업적인 다양한 디지털 공간 안에서 살아야 한다면, 진정으로 나만이 소유하고 있는, 나에 의해 통제가 되는, 진정으로 나 만을 위한 디지털 공간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그래도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것이 디지털 공간의 주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다양한 디지털 공간에서 어떤 카테고리에 속한 그룹의 한 멤버일 뿐 디지털 세상 안에서 ‘나’라는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MASERINTS’라 불리는 디지털 공간에 대해 나 만을 위한 디지털 공간이란 진정한 의미를 더 알아가 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MASERINTS의 개념적 디자인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이라고 하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적인 내용들이 많을 것 같아 개념적 디자인으로 접근하기에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궁금했던 것은 나 만을 위한, 나에 의해서만 통제가 되는 나를 중심으로 개인화(Personalization)가 완전이 제공되는 디지털 공간을 내가 소유해서 가지고 다닌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MASERINTS는 특정한 공간에 제한된 디지털 공간이 아니라 내가 항상 같이 가지고 다니는 그런 디지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 공간에서 내가 매일 하는 일이란 휴대폰이나 컴퓨터, 그리고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공간을 넘나든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내 주변에서 계속해서 스스로 변화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공간은 온전히 나 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질문과 욕구가 MASERINTS의 개념적 디자인의 시작점이 되었고, 나는 단순히 상업적이거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디자인된 그런 디지털 공간이 아닌, 오직 나 만을 위한, 내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나와 함께 살고 성장하면서 동행하는 동반자와 같은 살아 있는 디지털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압도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관심과 주의력(Attention)을 존중하며, 조용히 나를 돕고, 지지하고, 이끌어주는 그런 공간이 나의 디지털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열망으로 나는 나 만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공간인 MASERINTS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개념적 디자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MASERINTS는 단순한 그저 그런 디지털 공간이 아니다. 미래의 디지털 공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담아내고자 하는 나의 시도이다. MASERINTS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주변에 이미 빽빽하게 차 있는 다른 여느 디지털 공간들과는 다른 공간이기를 바라면서 그에 대한 개념적 디자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MASERINTS와 함께하는 그 여정의 이야기, 그 여정 속에서 가지는 나의 경험, 호기심 그리고 MASERINTS가 어떻게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지, 그 생각을 아이디어로 구체화시키면서 그런 과정이 단계적으로 펼쳐지는 개념적 디자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MASERINTS라는 베이스캠프에서 다양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때로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과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고, 때로는 기술적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때로는 기억과 경험에 대해서 심리학적인 관점과 철학적 관점을 되짚어 보고, 때로는 영화 대본처럼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멈출 수도 있다. 그러면서 MASERINTS라는 디지털 공간의 개념적 디자인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다.

내가 이제부터 펼칠 개념적 디자인은 조금씩 깎으며 모양이 만들어지는 조각상 같을 것이며, 또 하나씩 맞춰가는 퍼즐과도 같을 것이다. 또한 나와 동행하는 동반자인 VPTS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PTS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PTS의 요구와 필요를 정확히 알 수 있는 VPTS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MASERINTS는 PTS의 ‘Digital Brain’을 구성하여 VPTS로 하여금 PTS의 요구와 필요를 언제라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진행되는 여정 속에서 MASERINTS의 디지털 공간을 조금씩 구체화해 가면서 꼭 알려 주고 싶은 것들, 또 호기심이 생겨 알게 된 부분들도 역시 여기에 남기려고 한다.

또 나에게 있어 왜 그런 미래의 ‘나’만을 위한 디지털 공간을 원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 길로 출발하게 되었는지, MASERINTS를 통해 알려 주고 싶은 핵심 개념은 무엇인지, MASERINTS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공간은 어떤 종류의 디지털 공간인지, 사람들이 MASERINTS와 어떻게 인터랙션 하기를 바라는지, 또 MASERINTS가 구축하는 기술적 토대는 무엇인지, 그리고 MASERINTS가 열어주는 미래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등을 다루면서 개념적 디자인을 해 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씩 더 큰 그림으로 맞춰져 갈 것이다.

(1) The Coming Age of Calm Technology, Mark Weiser, John Seely Brown, 1996, https://veryinteractive.net/pdfs/weiserbrown-thecomingageofcalmtechnology.pdf

(2) Ubiquitous Computing, Mark Weiser, August 16, 1993, https://rasmusbroennum.wordpress.com/wp-content/uploads/2009/02/ubiquitous-computing-mark-weiser-1993.pdf

(3) The World is not a Desktop, Mark Weiser, November 7, 1993, https://www.dgsiegel.net/files/refs/Weiser%20-%20The%20World%20is%20not%20a%20Desktop.pdf

(4) Attention economy, https://en.wikipedia.org/wiki/Attention_economy

(5) 개념적 디자인이라는 단계는 제품연구개발에서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며, 결코 사소하게 다루어 져서는 안되는 단계이다. 휴대폰, TV, 자동차, 비행기와 같은 기술적 산출물도 처음에는 이 개념적 디자인을 위해 오랜 시간을 거쳐갔다. 이 단계에서는 마케팅에 관련된 사람들이나 구현팀도 같이 참석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제품 테스트팀도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문서화 작업과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오픈한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사용할 용어를 통일하기 위한 작업도 한다.

이 외에도 이 단계에서는 제품의 로드맵도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렇게 제품을 개발할 때 이 개념적 디자인 단계는 그 어떤 단계보다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집중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단계를 심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거치고 지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는 휴대폰, TV, 자동차, 비행기와 같이 그런 모양들, 그런 기능들을 가진 기술적 산출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개념적 디자인에 대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원하면 다음의 Site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6) Product Development Process: The Seven Stages Explained, Emilia Korczynska, 2025, https://userpilot.com/blog/product-development-process/

(7) The Critical Role of Conceptual Design in Product Success, https://www.designandproduct.co.uk/the-critical-role-of-conceptual-design-in-product-success/

(8) What Is Conceptual Design? 4 Essential Steps To Create A Concept Design, https://www.numi.tech/post/conceptual-design

(9) Working memory costs of task switching, Baptist Liefooghe, Pierre Barrouillet, André Vandierendonck, Valérie Camos, 2008, https://pubmed.ncbi.nlm.nih.gov/18444750/

(10) The double task-switching protocol: An investigation into the effects of similarity and conflict on cognitive flexibility in the context of mental fatigue, Marcel F Hinss, Anke Brock, Raphaëlle N Roy , 2023,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955658

(11) Task switching: interplay of reconfiguration and interference control, André Vandierendonck, Baptist Liefooghe, Frederick Verbruggen, 2010, https://pubmed.ncbi.nlm.nih.gov/20565170

(12) 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Mark Weiser, 1991, https://www.cs.cmu.edu/~jasonh/courses/ubicomp-sp2007/papers/02-weiser-computer-21st-century.pdf, https://webpages.charlotte.edu/richter/classes/2006/6010/readings/WeiserSciAm.htm

> Mark Weiser는 이렇게 말했다. “The most profound technologies are those that disappear. They weave themselves into the fabric of everyday life until they are indistinguishable from it.”, 이것은 Mark Weiser 박사의 비전의 핵심이다. 컴퓨팅은 인간을 기계에 적응시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인간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 또한 Mark Weiser는 그의 글에서 컴퓨팅을 중심에 집중되는 대상으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대신, 컴퓨터는 우리 삶의 배경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 우리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13) Insights into control over cognitive flexibility from studies of task-switching, Tobias Egner, Audrey Siqi-Liu, 2024, Current Opinion in Behavioral Sciences,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2352154623000967

(14) Interruption Cost Evaluation by Cognitive Workload and Task Performance in Interruption Coordination Modes for Human–Computer Interaction Tasks, Byung Cheol Lee, Kwanghun Chung, Sung-Hee Kim, 2018, Applied Sciences, https://www.mdpi.com/2076-3417/8/10/1780